도둑맞은 후, 프랑스의 보물이 된 '모나리자'

김형민 2020. 11. 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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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기 전까지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심장'이 아니었다. 도둑인 페루자가 다빈치의 국적을 언급하기 전까지 '이탈리아인의 영혼'도 아니었다. 10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 모나리자와 그의 신전은 여전히 견고하다.
ⓒEPA7월6일 재개관한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마스크를 쓴 관람객들이 모나리자를 감상하고 있다.

현존하는 예술 작품 가운데 최고의 몸값을 지닌 그림은 무엇일까. 실제로 거래되는 작품과 박물관에 내걸린 그림들을 모두 망라해서 말한다면 단연 으뜸은 ‘모나리자’ 아닐까. 〈기네스북〉에 따르면 약 40조원의 가치라고 하지만 400조원을 준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는 모나리자를 팔지 않을 거야. 프랑스가 자랑하는 루브르박물관의 상징이요, 심장 같은 작품이니까. 그런데 20세기 초반만 해도 이 모나리자는 요즘처럼 천하제일의 보물 취급을 받지는 않았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의 초빙으로 프랑스에 갈 때 챙겨갔고, 다빈치 사후 프랑스 왕가의 소유가 되어 프랑스의 보물로 수백 년을 지내온 모나리자는 20세기 들어 몇 번의 해외 나들이를 경험한 바 있다. 1963년 미국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간절히 호소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을 밟았고 모스크바와 도쿄에도 그 모습을 드러냈지. 그야말로 철통같은 경호와 천문학적인 보험료를 들인 비싼 나들이였단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가장 길었던 프랑스 밖 나들이(?)는 그렇게 순탄하지도 호화롭지도 못했어.

1911년 8월22일 모나리자 그림을 즐겨 찾던 화가 루이 베루는 평소처럼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 섰다가 일순간 눈을 화등잔같이 크게 뜬다. 두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나 비벼봤지만 목전에 펼쳐진 것은 ‘수수께끼의 미소’를 가진 주인공이 아니라 모나리자의 빈자리였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경비 책임자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심드렁했다. “홍보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가져간 거 아니겠습니까. 가끔 그런 일 있잖아요.” 이에 박물관 본부에 연락했으나 돌아온 답은 “그런 사실 없음”이었다. 그제야 루브르박물관 직원들의 머릿속에 거대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어. “모나리자가 없어졌다.”

박물관은 즉시 폐쇄됐고, 온 박물관 내부를 서캐 훑듯 뒤졌지만 모나리자는 발견하지 못했어. 전날인 8월21일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거야. 당시 모나리자는 지금처럼 ‘루브르의 심장’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아니었어. 하지만 뜻하지 않게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것의 가치와 그에 대한 집착은 수직 상승하게 마련이야. 이를테면 숭례문에 별 관심이 없던 한국인들도 어느 정신 나간 노인의 방화로 숭례문이 불탔을 때 눈물을 흘린 것처럼 말이다.

“영원한 미소를 잃어버렸다!” 프랑스 언론은 연일 분노를 터뜨리며 모나리자 실종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평소 모나리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대거 빈자리라도 보겠다며 몰려들었어. “프란츠 카프카와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도 모나리자가 사라진 자리를 보려는 대열에 합류했다. 브로트가 일기에서 썼듯이 모나리자의 이미지는 도처에 있었다. (···) 매체를 막론하고 모든 문화에서 흘러넘치게 되었다(〈모나리자 훔치기〉, 다리안 리더 지음).” 모나리자는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사라졌기에’ 갑자기 떠버린 거야. 아울러 품격 높으신 귀족들이 감상하던 고고한 미술품에서 벗어나 무더기로 몰려드는 대중의 여신으로 광장에 모셔지게 돼.

ⓒWikipedia모나리자를 훔친 빈센초 페루자.

이탈리아의 영웅이 된 그림 도둑

당연히 경찰은 눈에 불을 켰다.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용의자로 족치려 들었지. 파블로 피카소도 그중 하나였어. 도난당한 줄 모르고 어떤 미술품을 사들였던 전력이 문제가 됐거든. “미라보 다리 밑에 센강은 흐르고”라는, 그 유명한 시구를 남긴 시인 아폴리네르도 잠시나마 철창신세를 진다. “예술가의 상상력을 가로막는 박물관을 불태워버려라”라는 과격한 언사를 내뱉고 장물 취득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었지. 물론 둘은 범인이 아니었어. 대담하게도 박물관에 걸린 모나리자를 벽에서 떼어내 태연하게 들고 나간 사람은 따로 있었지. 빈센초 페루자라는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는 모나리자 그림에 안전유리를 씌우는 작업을 했던 노동자였어. 당연히 액자 유리를 신속히 떼어낼 수 있었지. 그는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해 코트 자락에 숨긴 뒤 유유히 박물관을 나와 자신의 집에 숨겨두었어. 사실 그는 진작 체포될 수도 있었다고 해. 현장에 페루자의 지문이 큼직하게 남아 있었거든.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집까지 찾아왔지만 지문을 조회하거나 가택을 수색하지 않았다. ‘하층 외국인 노동자가 예술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훔칠 리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지. 페루자는 그림을 들고 이탈리아로 귀국해서 세상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어.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편지를 보낸다. “루브르에서 도난당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가지고 있소. 다빈치가 이탈리아인이었으니 이 그림의 주인은 이탈리아가 돼야 하오. 이 걸작을 본디 있던 자리로 돌리고 싶소. 레오나르도.”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는 반신반의하며 ‘레오나르도 페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를 만났다. 그림을 확인한 그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지. 루브르박물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진품 모나리자였으니까. 여기서 그가 ‘레오나르도 페루자’ 아니 빈센초 페루자의 뜻대로 10만 달러 정도에 그림을 사서 피렌체에 흔했던 부자 중 한 명에게 몇 배를 받고 팔았다면 모나리자는 영원히 수장고 속 잠자는 공주가 되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는 그러기엔 반듯한 사람이었다(간이 작았다고나 할까). 그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빈센초 페루자는 체포되고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정부의 손에 들어갔어.

10만 달러에 모나리자를 거래하려 했던 페루자는 이렇게 항변했어. “모나리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이탈리아 문화재를 약탈해간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사람들 역시 모나리자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어.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의 영국박물관에 있는 이탈리아 예술품이 한두 점이겠니. 그런데 모나리자를 프랑스로 가져간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고(이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고향으로 되돌리려 했다는 허무맹랑한 범행 동기는 이탈리아 국민들을 열광시켰어. 통일 왕국을 이룬 지 수십 년밖에 안 되는 이탈리아에서 페루자는 일약 국민 영웅이 됐고 전국에서 쏟아지는 꽃다발과 선물 공세에 파묻힐 지경이었지.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그 부재(不在)로 인해 비로소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면, 이탈리아의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인들의 영혼을 하나로 묶었던 거야.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반환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피렌체, 로마, 밀라노를 순회하며 모나리자 전시회를 열었어. “구름 관객이 몰려들었다. 그림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로마를 거쳐 밀라노 전시가 이어졌다. 이 전시엔 이틀 동안 6만명이 몰렸다(〈신동아〉 2019년 5월호, ‘명작의 비밀’).” 그 뒤 이탈리아인들에게 모나리자는 ‘이탈리아로 돌아와야 할’ 보물로 각인된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흘러, 프랑스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루브르박물관 측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프랑스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나리자를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격분했어.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이런 짓 그만둬라.” 이에 대해 루브르박물관은 공식적으로 응대하지. “모나리자는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구입한 것이다(우리 거야! 시끄러워!).” 오늘날, 루브르박물관은 통째로 모나리자를 위한 신전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100여 년 전 페루자가 자신을 훔쳐가기 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지위를 만끽하며 ‘신비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페루자에게 과연 어떤 인사를 할지 궁금해진다. 프랑스어로 ‘메르시 무슈 페루자!’ 하며 손 키스를 보낼까, 아니면 이탈리아 말로 “그라치에 시뇨레 페루자”라고 윙크를 할까? 

김형민(SBS CNBC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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