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혈맹 아니다" 주장한 중국 학자 강연 생중계 돌연 중단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0. 1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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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사 전문가인 션즈화 중국 화동사범대 교수. /소셜미디어

6·25 전쟁과 냉전사(冷戰史) 분야 권위자인 중국 화동사범대 션즈화(沈志華) 종신교수의 강연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다 돌연 중단됐다. 션 교수는 비밀문서 등을 통해 6·25 전쟁을 포함해 냉전시기 북·중의 이해가 충돌했다는 사실을 밝혀왔는데 일부 중국 네티즌이 “션 교수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정당성을 부정한다”며 강연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뜻으로 6·25 전쟁의 중국식 표현이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션 교수는 지난 5일 베이징 수도사범대에서 ‘소련 사회주의 모델의 수립과 종식’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연은 중국 인터넷 방송인 ‘비리비리’를 통해 생방송 됐다. 하지만 강연이 시작되고 1시간만에 생중계가 중단됐다. 방송을 중단시킨 게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대학 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의적 제보로 정상적 학술 교류가 심각하게 방해받았다”면서도 “고민 끝에 이번 강연 영상은 (인터넷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션 교수는 ‘북·중은 혈맹(血盟)’이라는 신화를 깨는 연구를 해온 학자로 평가된다. 중국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이 6·25 전쟁 참전을 결정한 것은 북한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신임을 얻고 소련과 맺은 중·소 조약을 이용해 중국 정권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션 교수는 또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굳어지자 김일성은 빠른 휴전과 경제건설을 원했지만, 마오쩌둥은 장기전을 원하는 등 둘의 이해가 엇갈렸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국 좌파(마오쩌둥과 공산당을 적극 지지하는 견해) 사이트인 ‘유토피아’에는 지난 16일 션 교수의 견해를 비판하며 공개 강연을 마련한 수도사범대 관계자를 징계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장싱더(張興德)라는 이름의 필자는 중국 공산당 수도사범대 당위원회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션 교수의 강연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군 6·25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을 부정하는 ‘정치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학계에서 (션 교수의) 부정적 영향을 제거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사이트는 그간 여러 차례 션 교수의 6·25, 북·중 관계 연구에 대해 “정치의식이 없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대해 션 교수는 “해당 사이트가 오랫동안 나를 공격해 왔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명보는 전했다. 션 교수는 또 생방송 중단과 관련해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웃어넘겼다”며 “요즘 중국 네티즌들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으면 곧바로 고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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