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건축의 선봉, 자하 하디드(下)
[효효아키텍트-62] 하디드는 비트라 소방서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지만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1994년 영국 웨일스 남부 카디프 베이 오페라 하우스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10년이 지난 2004년이 되어서야 설계안대로 오페라 하우스가 완성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종이 위 도면이 하나씩 건물로 완공되기 시작했다.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 휘감아 날아올라갈 것만 같은 비정형 곡선 건물을 세계 곳곳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베르기셀 스키점프대(2002)는 수학적 정확성을 자랑하는 고차원 스포츠 시설이다. 카페와 전망대 같은 일반인들을 위한 공간을 포함시켜야 하는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건축물 상층구조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대조를 이루며, 1층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로비는 외부 도로의 연장 공간으로 느껴진다. 전체 외형은 어두운 회색 몸체와 그 사이 중간에 끼어 있는 밝은 색 박스들로 이뤄졌다. 각 층은 내부 로비를 통하며, 이곳에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대한 곡선으로 이뤄진 구조가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엮이며 펼쳐져 천장까지 이어진다.
아래층에는 15m에서 18m 길이 산화알루미늄 외장 계단이 지그재그 형태를 이루며 놓여 있다. 이곳은 도시의 카펫이라는 개념에 기반해, 건축물 안으로 거리의 영역을 연장한다. 현대미술센터가 대중을 위한 공공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2004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1979년 상이 제정된 후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인 프랭크 게리는 "하디드는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가장 젊은 건축가이자 지난 수년간 가장 뚜렷한 건축학적 궤적을 가진 인물 중 하나"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번개 모양을 닮은 이 건물은 관리직과 생산직 근무자, 산업 공간과 전시 공간을 뒤섞고 작업과 휴식을 혼합하였다. 건물의 구성은 투명하면서도 유연하다. 건물 안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넓은 로비가 있고, 안뜰을 통해 자연광이 건물 중심부까지 들어온다.
덴마크 오드로코 미술관(Ordrupgaard·2005)은 외부에서 보면 무덤에 덜렁 얹혀 있는 시멘트 덩어리 같다. 기존 미술관에 덧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이 건물의 개념은 '문화재생'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건물 형태와 역사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오늘의 뜻과 시간성을 보탠다. 21세기 미술관 건축의 현재성을 잘 보여 준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작품과 덴마크 근·현대 화가들의 컬렉션으로 이름난 오드로코 미술관은 안팎을 이어주는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곡선 구조는 미술관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2006년 뉴욕현대미술관이 '자하 하디드: 건축가로서의 30년'전을 선보였다. 하디드의 전성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샤넬의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Mobile Art Pavilion for Chanel·2008)은 큰 화제를 몰고왔다. 이 프로젝트는 전시만을 위한 전시장을 분해·조립해 2010년까지 세계 7개 도시를 옮겨 다니는 '움직이는 전시장'을 콘셉트로 기획되었다. 외계에서 불시착한 UFO처럼 도심 한가운데 내려앉은 샤넬 모바일 파빌리온은 하디드의 시그니처인 직선 없는 '흐르는 곡선'이라는 유기적인 형태가 잘 드러난다. '모바일' 이라는 콘셉트에 적합하도록 미술관을 이루는 모든 부품들은 크기가 2m를 넘지 않게 설계되었고, 모두 원형 그대로 해체와 결합이 가능하다.
로마, 현대미술관 막시(MAXXI·2010)는 이탈리아 최초 모던아트·건축 미술관이다. 유서 깊은 도시 로마에 미래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을 접목시켰다. 미술관의 벽은 마치 어떤 흐름을 갖고 움직이며 흘러가는 듯한 디자인이다. 방들은 고정돼 있지 않고 천장에 설치된 칸막이를 활용할 수 있어 큐레이터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운다. 개관식에서 하디드는 "미술관은 관람객과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문화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디드는 2010년과 2011년에는 영국의 스털링상을 연속으로 받았다. DDP보다 앞서 준공된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하우스(2011)는 1800석 규모 대극장을 중심으로 여러 부속 건물을 거느리고 있다. 콘크리트와 유리, 철강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하디드 스타일의 조형미를 자랑한다. 흐르는 곡선과 볼륨의 형태를 철골과 유리로 짓는 건축물에 반영하기 쉽지 않다. 재료도 거대해질 뿐만 아니라 비용도 증가한다. 하디드는 유리와 징크 패널을 작은 삼각형으로 쪼갰다. 쪼갠 것들을 조금씩 각도를 틀어 이어 붙여 곡선을 만들었다. 5년이 걸렸다.
알리예프 예술센터(Heydar Aliyev center, baku, azerbaijan·2013),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2014)를 잇달아 준공했다.
하디드는 건축교육자로서의 임무에도 충실했다. 하바드, 예일, 일리노이(시카고), 컬럼비아, 함부르크 시각미술 대학, 오스트리아 비엔나 응용미술대학 등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하디드의 건축이 절정에 이를즈음 2016년 3월 31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아미의 한 병원에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타계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틈」의 다이얼로그' (구영민 지음)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오늘의 매일경제TV] 상생의 농토피아가 되는 길
- [오늘의 MBN] 배우 송승환의 인생 이야기
- [포토] `세계유산 힐링큐브` 개막식
- [매경e신문] 오늘의 프리미엄 (11월 20일)
- 국립중앙박물관회장 윤재륜, 신임 이사에 정용진 부회장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송도는 지금…3년 만에 웃음꽃 핀다 [전문가 현장진단]
- 방탄소년단 진, ‘2024 파리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되다...열일 행보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