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숨어있는 도시 속 바람과 구름

최정훈 2020. 11.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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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자비(登高自卑),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각각 '일을 하는 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 '기초가 약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두 고사성어는 언뜻 보기엔 달라 보이지만 그 의미는 결국 일을 함에 있어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매일매일 도시에 날씨는 그 속에 있었고 관측할 수 있는 곳은 빌딩 내 옥상이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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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등고자비(登高自卑),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각각 ‘일을 하는 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 ‘기초가 약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두 고사성어는 언뜻 보기엔 달라 보이지만 그 의미는 결국 일을 함에 있어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기예보의 기초는 관측으로부터 출발한다. 관측이라는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전달되는 일기예보는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이 될 뿐이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은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빌딩 속에도 바람도 있고, 하늘을 쳐다보면 구름도 있다. 매일매일 도시에 날씨는 그 속에 있었고 관측할 수 있는 곳은 빌딩 내 옥상이 그 중 하나다.

그러므로 기상청은 옥상을 관측하는 데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전체 관측지점 31개 중 옥상 녹지화가 이루어진 지점을 제외하면 옥상 지점은 아홉 곳이다. 이들 옥상은 지면과 높이가 다르고 재질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지면과의 환경 차이를 측정하여 그 값을 줄이기 위해서는 옥상 녹화(綠化) 실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 서울 등 대도시에는 빌딩풍과 같은 특이한 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바비, 마이삭, 하이선과 같은 강력한 태풍이 여러 번 다가오는 등 지금까지의 기상재해와는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그러한 기상 현상을 더 잘 이해하여 재해에 맞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관측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기상 현상의 발생 과정을 살펴봐야 하고 시간적, 공간적 규모에 맞는 관측소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크고 높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에 설치된 관측 장비가 세계기상기구(WMO)가 권고한 관측 환경 기준을 만족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한 건물에서 온도를 관측하면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보다 0.5℃가 상승하고, 설치된 모든 에어컨에서 건조열이 방출되었을 때는 1℃, 방출량이 두 배로 증가되었을 때는 2℃까지 밤 시간대의 기온이 상승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옥상 녹화 실험의 또 다른 효과는 건축물의 단열효과를 높여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건축물을 보호하는 등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경관 향상과 도시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효과는 물론 환경오염방지, 도시생태계복원, 기후조절, 소음 감소 등의 환경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기상청은 10월 도심 내 옥상에 잔디를 조성하여 녹화 실험을 시작했다. 그 대상 관측지점은 기상청 내 건물 옥상이며 현재 잔디식재 등 실험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실험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옥상 녹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건물 옥상 녹화를 통한 관측 장비 운영은 옥상 환경에 맞게 장비를 어떻게 설치하느냐가 중요하다. 단순히 잔디를 깔고 관측 장비의 높이를 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녹화된 옥상의 관측 장비 운영에 맞는 적정한 환경 기준과 장비 설치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심 옥상 녹화는 빠르게 도시화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정밀한 관측 자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위험기상이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100% 정확한 예보를 생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푸른 옥상에서의 관측을 통해 고품질의 자료를 수집·분석한다면 보다 나은 일기예보 생산이라는 큰 성을 짓는 데에 탄탄한 기반을 이루게 될 것이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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