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은 결코 쉽지 않다[슬로우볼]

안형준 2020. 1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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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아름다운 이별'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겨울의 초입에서 어느 때보다 큰 고민을 하고 있다. 팀을 상징하는 스타였던 야디어 몰리나와의 동행 여부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1982년생 포수 몰리나는 2000년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에 지명됐고 2004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포수 명가'인 몰리나 가(家) 3형제 중 막내인 몰리나는 형들과는 다른 팀에서 데뷔해 형들과는 다른 커리어를 보냈다.

두 개의 황금장갑과 하나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가진 맏형 벤지 몰리나와 두 개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가진 둘째 호세 몰리나는 각각 빅리그에서 13년, 15년을 뛰었고 여러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막내 야디어는 남달랐다.

몰리나는 두 형보다 훨씬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세인트루이스에서만 17년을 뛰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 황금장갑 9개, 은방망이 1개를 챙겼다. 형들은 밟지 못한 올스타전 무대를 9차례나 밟았다. 최고의 수비수에게 수여되는 플래티넘 글러브도 4번이나 받았다.

17년 동안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2,025경기에 출전한 몰리나는 .281/.333/.404, 160홈런 932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데뷔한 조 마우어, 2009년 빅리그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버스터 포지(SF)보다 '타자'로서는 부족했지만 '포수'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우어가 1루수 이동 후 은퇴하고 포지가 포지션 이동을 고민하는 동안 몰리나는 마스크를 쓰고 홈플레이트 뒤를 한결같이 지켰다. 몰리나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최고의 선수도 나이를 먹는다. 몰리나는 어느덧 38세가 됐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몰리나 뿐 아니라 몰리나가 2000년부터 몸담아온 세인트루이스 구단 역시 마찬가지다.

몰리나는 2020시즌을 끝으로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이 만료됐다. 그리고 현재 FA 시장에서 팀을 찾고있다. 2018시즌을 앞두고 한 말을 지난 봄 번복했다. 몰리나는 2018시즌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와 3년 6,0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맺으며 해당 계약이 끝나면 유니폼을 벗겠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현재 몰리나는 2년을 더 뛰고 싶다며 2년 계약을 맺을 팀을 찾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곤혹스럽다. 30대 중반의 몰리나와 연 2,0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고 애덤 웨인라이트와도 계약을 이어갔을 정도로 세인트루이스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대우해온 팀이다. 하지만 몰리나에게 선뜻 2년 계약을 안겨주기는 쉽지 않다.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의 리더였고 세인트루이스 투수진이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존재다. 세인트루이스 투수들은 다른 포수가 아닌 최고의 포수 몰리나와 호흡할 때 더 좋은 성적을 썼다. 30대 후반이 된 나이에도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의 주전 포수였다. 팀 내에서 몰리나가 갖는 절대적인 입지, 그리고 여전히 다른 이들보다 너무도 뛰어난 '포수 몰리나'의 능력을 감안하면 재계약을 맺을 경우 몰리나는 또 주전 포수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세인트루이스의 고민이다.

세인트루이스는 몰리나의 '장기 집권기' 동안 몰리나의 뒤를 이을 포수를 전혀 육성해내지 못했다.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카슨 켈리라는 재능있는 포수를 지명했고 켈리는 TOP 100 유망주에 선정될 정도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몰리나라는 큰 산이 천년을 사는 거목처럼 버티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안방에 켈리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는 폴 골드슈미트를 영입하며 켈리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로 보냈다. 켈리가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 수는 63경기에 불과했다.

아무리 재능있는 선수라도 출전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성장할 수 없다. 만약 세인트루이스가 몰리나와 2년 계약을 맺고 2년 더 몰리나에게 안방을 맡긴다면 몰리나는 40세까지 만족스러운 현역 생활을 한 뒤 기분 좋게 유니폼을 벗겠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몰리나가 떠난 뒤 갑작스러운 포수 공백과 미주해야 한다.

현재 세인트루이스 팀 내 첫 번째 포수인 앤드류 키즈너는 켈리보다 한 살 어린 1995년생. 몰리나가 2년 계약으로 잔류할 경우 키즈너는 2023년 시즌에 '신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험을 가진 28세 포수'로 그라운드에 던져지게 된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몰리나가 30대 후반까지 주전 포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만큼 켈리의 후임으로 빅리거가 된 키즈너도 2년 동안 겨우 빅리그에서 26경기밖에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부족한 경험을 부딪히며 쌓아야 한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것이 낫다. 같은 상황이라도 26세에 맞이하는 것과 28세에 맞이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키즈너 개인 뿐 아니라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키즈너가 경험을 쌓는 것은 중요하다. 세인트루이스는 룰5 드래프트에 대비해 싱글A 소속 포수 유망주인 2000년생 이반 에레라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에레라는 세인트루이스가 미래 안방의 주인으로 기대하는 포수. 하지만 키즈너가 향후 2022년까지도 제대로 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에레라 역시 키즈너와 다를 것 없는 입장에서 빅리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몰리나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몰리나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 그리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것은 구단 입장에서도 팬들의 입장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3년 전 자신이 한 말대로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었다면 좋았겠지만 몰리나는 현역 연장을 선택했다. 그런 몰리나에게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여러 팀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세인트루이스도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한다.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 최선은 몰리나가 부동의 주전이 아닌 키즈너의 뒤를 받쳐주는 형태로 잔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세인트루이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과연 몰리나와 세인트루이스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 될까. 팀과 전설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까.(자료사진=야디어 몰리나)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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