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설계한 여성 건축가, 이런 오명에 시달렸다고?

최윤아 2020. 11.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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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건축가'.

언론은 세계적 건축가에게서 굳이 '비혼 여성'을 보려 했다.

<우먼 디자인> 에는 세계 디자인 역사에 존재감 있는 획을 그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공동 작업자인 남편보다 더 주도적 역할을 했음에도 어시스턴트 취급 당했던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렐라 비녤리, 자신의 디자인 숍에 가상의 남성 이름을 붙였던 아일린 그레이 등의 일화에서는 서글픈 기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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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디자인리비 셀러스 지음, 신소희 옮김/민음사·2만6000원

‘탁상 건축가’. 디디피(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이라크 출신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를 한때 따라다녔던 오명이다. 건축물을 직선에서 해방시키고, 중력을 거부하는 그의 설계는 국제 공모에서 당선되고도 번번이 폐기됐다. 실현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폐기된 설계’에 대해 질문받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난 여성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 점을 문제 삼습니다. 난 외국인인데 이 또한 문제가 되고요. 그리고 내 작업은 표준을 벗어난 것인데 이 역시 이상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이 모든 점들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지요.”

2012년 런던 올림픽 수영장,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 현대미술관 등 전 세계 44개국에서 30개 이상 프로젝트를 ‘도면’에서 ‘지면’으로 성공리에 옮겨오자 ‘탁상 건축가’라는 비아냥은 멈췄지만, ‘후려치기’는 멈추지 않았다. 언론은 세계적 건축가에게서 굳이 ‘비혼 여성’을 보려 했다.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그는 ‘여성 건축가’라는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하 하디드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런던 올림픽 수영장. ⓒAlamy Stock Photo/Arcaid Images

<우먼 디자인>에는 세계 디자인 역사에 존재감 있는 획을 그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디자인 역사 연구자이자 큐레이터인 리비 셀러스는 서구 백인 남성들로 채워진 디자인사에서 여성을 소환한다. 지은이는 약 120년간 건축, 직물, 제품, 산업, 그래픽, 디지털 매체, 무대 미술, 자동차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업계 최전선에 있었던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성취는 물론 그들이 받았던 오해와 오명까지 불러온다.

자하 하디드 ⓒGetty Image/Jeff J. Mitchell

19세기 후반부터 여성의 디자인 산업 진입은 장려됐으나 유서 깊은 성차별을 단박에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 바우하우스가 대표적이다. 개교 당시 “여성과 남성 사이 그 어떤 구별도 없어야 한다”고 선언까지 했지만, 여성은 금속 공방 대신 직조 공방으로 안내되었다. 바우하우스 14년 역사를 통틀어 금속 공방에 들어갈 수 있던 여성은 단 14명뿐이었다고 한다.

공동 작업자인 남편보다 더 주도적 역할을 했음에도 어시스턴트 취급 당했던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렐라 비녤리, 자신의 디자인 숍에 가상의 남성 이름을 붙였던 아일린 그레이 등의 일화에서는 서글픈 기시감이 든다. 일본, 헝가리, 트리니다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실로 다양한 국적을 지닌 여성 디자이너가 등장하지만 한국은 없다는 사실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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