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장난감

한겨레 2020. 11.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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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독서와 거리가 멀던 고등학생 아들이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며 서점에 가자고 했다.

F3 에세이 코너에서 유병재 얼굴 사진이 커다랗게 들어간 노란색 표지 책을 집어 들고 온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결제를 요청했다.

'말장난'이란 제목부터 맘에 안 들었던 아빠는 아들에게 왜 하필 이 책을 사고 싶은 건지 물었다.

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 책이 인기라면서 책 구매 인증샷을 유병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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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책&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말장난
유병재 지음/아르테·1만6000원

평소에 독서와 거리가 멀던 고등학생 아들이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며 서점에 가자고 했다. 아빠는 기쁜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바로 서점으로 향했고, 엄마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색을 보이며 따라나섰다. 서점에 도착해 도서 검색기 앞으로 당당히 걸어간 아들은 깜빡거리는 커서에 ‘말장난’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F3 에세이 코너에서 유병재 얼굴 사진이 커다랗게 들어간 노란색 표지 책을 집어 들고 온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결제를 요청했다.

‘말장난’이란 제목부터 맘에 안 들었던 아빠는 아들에게 왜 하필 이 책을 사고 싶은 건지 물었다. 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 책이 인기라면서 책 구매 인증샷을 유병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것이라고 했다. 유병재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신간 출간 기념으로 ‘독자 성함 삼행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좀처럼 삼행시 짓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아들은 혹시나 자신의 이름 삼행시가 유병재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책을 구매한 것이었다. 남의 집 아닌 우리 집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 방송인 겸 작가인 유병재의 <말장난>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이미 유병재의 사회관계망서비스 팔로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10월28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최상위 목록에 올랐다. 14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유병재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책과 관련된 여러 이벤트 공지와 게시물들이 올라와 있다. <말장난>은 제목처럼 ‘말장난’ 같은 농담 삼행시 모음이다. 순한맛, 중간맛, 매운맛으로 구분돼 다양한 주제에 대한 201편의 촌철살인 삼행시가 담겨 있다. 워낙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인이 일상을 둘러싼 낱말들을 표제어로 마치 놀이처럼 삼행시를 소개하고 있어 부담 없이 읽힌다. 반면 지나치게 여백의 미를 살린 책의 편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말장난>은 ‘책 같지 않은 책’ ‘돈 주고 사기에 아까운 책’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말장난 같은 삼행시를 모아 놓은 책을 읽으며 낄낄거린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대변하는 삼행시를 만나면 곧바로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유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유병재 삼행시가 ‘해시태그(#)’를 달고 빠른 속도로 공유된다. 유병재의 삼행시에서는 짧지만 강한 글의 힘이 느껴진다. “기를 쓰고 잊으려, 억지로 잊지 않으려.” “하루 종일 혼자라 생각했는데 늘 함께였어” “오지도 않은 내일을 늘 걱정한다.” “지금 또 먹어? 방금 먹었는데?” “직장 생활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장사했지. 장사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사표 안 썼지.”

디지털 시대에 책은 무엇일까? 책은 어때야만 할까? 이제는 이런 질문조차 고루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진지하거나 지루하면 바로 외면당하는 요즘 시대에 젊은 세대들에게 책은 어쩌면 ‘장난감’으로 인식되고 또 소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치한 말장난인 줄 알았는데 처절한 자기 고백이 읽힌다. 병맛을 가장한 고결한 인간의 나지막한 응원이 들린다. 재밌으면 장땡인 세상... 힘내라 유병재” 배우 유아인이 유병재 이름 삼행시로 남긴 책의 추천사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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