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꿈이라는데..

최재봉 2020. 11.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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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사진)의 장편 <비밀 문장> (2016)은 양자역학과 평행우주, 자각몽 세 이론틀을 토대로 삼아 과학과 문학의 결합을 꾀한 독특한 소설이었다.

<운명게임> 에서 소설가와 작중 인물의 관계는 '상위자아'와 '하위자아'로 표현되며, 더 나아가 소설가 역시 그를 지배하는 또 다른 상위자아의 하위자아에 불과한 존재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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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게임 1, 2박상우 지음/해냄·각 권 1만6500원

박상우(사진)의 장편 <비밀 문장>(2016)은 양자역학과 평행우주, 자각몽 세 이론틀을 토대로 삼아 과학과 문학의 결합을 꾀한 독특한 소설이었다. 그가 새로 낸 두권짜리 소설 <운명게임>은 그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가령 <비밀 문장>에 나오는 영체(靈體) ‘쿄쿄’는 주인공 문필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3차원 우주의 모든 것은 다른 차원에 있는 영체의 의식이 만들어내는 꿈이에요.”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원형의 폐허들’을 연상시키는 이런 생각이 <운명게임>의 바탕을 이룬다. 

소설은 28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이보리라는 인물을 주인공 삼은 소설 속 소설 14장과 그 소설을 쓰는 소설가 ‘나’의 이야기 14장이 교차하는 형식이다. 서른아홉 살 독신남 이보리는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독서와 명상을 통해 인간과 우주의 이치를 궁구하는 수행자. <인간 문제의 궁극에 대한 답>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에게 어느 날 신분을 감춘 노인이 사람을 보내 접근한다. 삶과 죽음, 자아와 외부 세계의 관계 등에 관한 문답에 응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제공하겠다는 것. 제안을 받아들인 이보리가 노인과 인생 문답을 펼치는 한편,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향한 그의 탐구가 그야말로 우주적인 모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소설 속 소설을 이룬다.

소설이란 작가의 상상의 소산인 만큼, 이보리의 이야기는 소설 속 작가의 뜻대로 흘러가야 마땅하건만, <운명게임>에서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2권 초반부에서 소설 속 작가는 “내가 애초에 꿈꾸던 소설은 나에게서 점점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2권 말미에 가면 아예 소설가와 작중 인물의 위치와 역할이 뒤바뀌기까지 한다. 소설이 소설가의 통제를 벗어나고, 소설 속 인물이 거꾸로 소설과 소설가를 조종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게임>에서 소설가와 작중 인물의 관계는 ‘상위자아’와 ‘하위자아’로 표현되며, 더 나아가 소설가 역시 그를 지배하는 또 다른 상위자아의 하위자아에 불과한 존재로 그려진다. 지구라는 3차원 공간을 점유했다가 스러져 가는 인간들 역시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상위자아의 한시적 대리인일 따름이다. 책 앞에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샤카무니(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제사(題詞)로 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의 세계는 유에프오(UFO)와 외계인, 길가메시 신화와 구약성경, 환생과 채널링(상위 차원과의 텔레파시) 등으로 확장되며 가히 우주적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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