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열쇠는 '호혜성의 윤리'

김진철 2020. 11.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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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 폴 콜리어 "양극화 벗어나려면 윤리적 담론 필요"
좌·우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 배척하고 실용주의적 대안 찾아야

자본주의의 미래

폴 콜리어 지음, 김홍식 옮김/까치·2만원

현대 자본주의를 둘러싼 위기의 경보음이 줄기차게 터져 나온다. 시장 실패와 격차의 확대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는 위기다. 이기심에 바탕한, 이른바 ‘합리적 인간’을 상정하는 주류 경제학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실패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서는 것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이거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의 재방송이다.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은 대개 뒤섞여 더 위험해지고 위기를 가속화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경제학·공공정책학 교수 폴 콜리어의 <자본주의의 미래>가 돋보이는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그는 좌·우 이데올로기 옹호자들로도, 포퓰리스트의 등장으로도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다며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폐기할 대상이 아니라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이다. 그가 내세운 ‘윤리적 자본주의’는 허황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소유주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 필요성을 제안하는 것만 봐도, 공동체와 윤리를 강조하는 콜리어의 주장이 추상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낳은 3가지 균열의 비극

폴 콜리어가 주목하는 자본주의의 실패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괴리의 심화다. 여기에는 부의 격차와 이에 따른 사회심리적 불안까지 포괄된다. 번창하는 대도시와 망가진 지방도시 사이의 지리적 분단, 초고소득층에 이르는 고학력자와 교육 받지 못해 지속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 사이의 새로운 계급 분단, 세계무역에서의 승자와 뒤처진 자 사이의 분단으로, 콜리어는 범주화한다.

북미 지역과 유럽, 일본 등의 대도시는 나머지 지역들을 크게 따돌리며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나머지 지역과 단절되고 있다. 콜리어의 지적처럼, 이제 수도인 대도시가 더는 그 나라를 대표하지 않는다. 대도시 안에서도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있어 격차는 더욱 심화한다. 주된 지배층으로 새로 떠오르는 이들은 “잘 교육받은 고학력자들로, 새로운 숙련 기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은 윤리적 우월성까지 지녔다고 여기며, 서로 강력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반면,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이들은 위기다. 기술변화와 세계화로 이들이 기존에 맡아온 반숙련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중장년층과 청년층이 일자리 상실의 최대 피해자다. 이들은 고학력자들에게 분개하고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물론 그들 서로에 대한 신뢰마저 놓아버린다. ‘황량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극단화’는 자본주의를 뿌리부터 흔들 가장 위험한 요소다.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은 문제 못 풀어

디스토피아를 목전에 둔 가운데 나타난 해결사들은 그 어느 쪽도 무능력하다는 것이 콜리어의 생각이다. 우선 이데올로기 옹호자들의 재등장이다. 경제학자들이 주축인 공리주의, 법률가가 대표하는 롤스주의, 여기에 자유 지상주의까지 그 무엇도 개인을 강조할 뿐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안이 아니라고 콜리어는 지적한다. 여기에 대중영합주의가 중첩돼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데올로기와 대중영합주의가 합쳐질 때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효과는 더욱 강력해진다. 한때 신뢰를 잃은 이데올로기들이 새로운 매혹적인 해결책을 팔러 다니는 열정적인 지도자들을 만나서 새롭게 단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들에게 환호하는 함성이 인다. 급진적인 좌파 이데올로기에서는 버니 샌더스와 제러미 코빈, 장뤼크 멜랑숑이 등장했고, 토착주의(또는 자국민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마린 르펜과 노르베르트 호퍼가, 분리주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나이절 패라지와 앨릭스 샐먼드, 카를레스 푸지데몬이 등장했다. 그리고 유명한 연예인의 세계에서는 베페 그릴로와 도널드 트럼프가 나타났다.” 콜린은 이들 모두를 배척한다.

자본주의는 관리 대상…더 잘할 수 있다

“고약한 세 균열은 내 삶의 목적의식을 정의하게 된 비극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나는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폴 콜리어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펴낸 이유다. 고약한 세 균열이란 자본주의의 실패에 따른 지리적·계급적·세계적 분단을 뜻한다. 그는 사촌이 ‘세 균열’의 영향으로 몰락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결과로 사촌의 증손녀를 입양하게 된다.

폴리어는 이 책에서 실용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좌파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능동적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좀 더 겸손한 역할을 수긍하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우파가 시장의 마법을 과장하고 윤리적 제약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지점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시장은 필요하지만 윤리에 기반한 목적의식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잘 작동하려면 생산성을 달성할 뿐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도록 자본주의를 관리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그가 역설하는 것은 윤리적 자본주의의 재구성이며, 이는 극단을 피하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요구로까지 이어진다. 대도시와 지방 사이에 발생한 지리적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토지와 건물의 가치 상승을 과세 대상으로 포착하는 것이 필요하며, 소득뿐 아니라 대도시라는 위치까지 세율 결정의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분단에 대처하는 정책수단으로는 학교 교육의 재정비, 일자리 안정, 주택 보급 정책 등을 열거하는데 ‘온화하면서도 강하게 개입하는 사회적 모성주의’를 철학으로 제시한다.

책의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날 더 잘했던 적이 있으며 다시 더 잘할 수 있다.” 더 잘했던 적이 없는 이 나라에선 어떤 고민과 성찰을 이어가야 할까.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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