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백신이 준 희망, 그러나 냉정해야

2020. 11. 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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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AFP, 연합뉴스

드디어 빛이 보인다. 1년 가까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를 이겨낼 백신 개발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최근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공동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이 임상 3상에서 95%의 효능을 보였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제약사 모더나도 예방률 94.5%라는 임상시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두 제약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 연내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특히 열광한 대목은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다. 그는 “12월 중순까지 허가를 받는다면 수백만개의 백신 공급을 시작할 수 있고 내년 여름부터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19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감염자는 5,600만명을 훌쩍 넘고, 이 중 약 135만명이 사망했다. 이 와중에 전해진 사힌 CEO의 발언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인류의 ‘승전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2만9,654명 확진, 498명이 사망한 우리나라에서도 보건당국을 향해 해외 백신을 빨리 확보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점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의 잇따른 백신 개발 낭보가 전 세계에 희망을 주는 상황에 어깃장을 놓기엔 무지렁이지만, 그래도 냉정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마치 백신 개발과 코로나19 종식을 등치시키는 분위기라서 더욱 그렇다.

“일러야 내년 말에야 나올 수 있을 것”이라던 전망보다 백신 개발이 앞당겨진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안전성과 효과의 지속성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미국 국립의료원(NIH)에 따르면 지금까지 나온 백신들의 평균 개발 기간은 11년. 가장 단시간에 나온 유행성이하선염 백신도 4년이 걸렸다.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에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후보 물질 생산 기간을 단축하고, 통상 거쳐야 하는 1~3상 임상 기간도 1상과 2상, 2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줄였다지만 안전성을 담보했다고 확신할 순 없다.

또 많은 이들이 “95% 예방효과”에 환호하나, 백신의 효과를 나타내는 항체생성률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현재까지 알려진 화이자 백신의 예방효과는 같은 수(2만2,000명)의 위(가짜)약 접종군과 백신 접종군에서 각각 162명과 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에서 도출됐다. 백신 접종군의 감염률(0.036%)이 위약 접종군의 감염률(0.736%)의 5% 수준에 불과해 95%의 예방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효과는 있지만, 의학적으로 백신의 효과를 검증하는 ‘접종군 중 몇 명의 체내에서 항체가 형성(항체생성률)됐으며 그 항체의 농도(역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화이자가 밝힌 95% 예방효과가 곧 백신 접종자 100명 중 95명에서 항체가 형성됐다는 게 아니다. 백신 접종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불분명하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침묵의 엄습’으로부터 이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점에서 백신 개발 소식은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백신이 당장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되레 의료계는 백신 개발 소식이 방역수칙을 안 지켜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 대유행을 재촉하지 않을지 더 걱정한다. 방역당국이 해외에서 100만명 이상 접종되고 부작용도 없는지 살핀 뒤 내년 하반기에나 국내 접종을 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는 만큼, 그 때까진 방역수칙을 지키는 인내와 냉정함이 필요하다.

[기자사진] 이대혁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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