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힐링을 파는 사람들

정상혁 기자 2020. 11. 20.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뭐든 상품화하는 세일즈 시대
혜민도 수완 좋은 장사꾼
'마음 치유' 판매상들 넘쳐나
같이 신음하며 치유 않고
고통만 써먹는 건 商道 아냐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을 판매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팔지는 알아서 정하는 것이다. 실제 가치와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냉소적으로 말해 모두 장사꾼이다.

최근 ‘혜민’이라는 승려가 대중의 분노를 샀다. 으레 승가(僧伽)에게서 기대하는 청빈한 삶과 다소 거리가 먼 이른바 ‘풀(full) 소유’의 생활 방식 때문이었다. TV 예능 화면 속에서, 그가 누리는 서울 삼청동 2층 저택의 여유로운 삶은 그가 입은 법복과 초현실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그의 금전적 애착을 고발하는 억하심정 섞인 여러 공격이 인터넷으로 확산되며 여론은 악화됐다. 그러나 애초에 그를 진지한 종교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중의 배신감은 종교적 당혹이라기보다 그가 상도의(商道義)를 어겼다는 데 기인한다. 그는 말하자면 성공한 업자였고, 절간 대신 방송이나 강연 무대에서 더 유명한 그의 법명은 연예인의 예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상도의 기본은 언행일치다. 애견숍 주인이 알고 보니 영양탕 애호가였음이 밝혀지면 난처할 것이다. 돈을 좇으려면 취향을 바꾸고, 취향을 좇으려면 업종 변경을 해야 옳다. 혜민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그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을 어제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어봤다. 스무 장쯤 넘기다 “복권 대신 꽃을 사보세요… 당첨 확률 백퍼센트인 며칠간의 잔잔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조용히 책장을 덮었다. 2010년대 들어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 한다. 잘 파는 것은 능력이다.

정상혁 문화부 기자

우환이 많은 사회일수록 ‘마음 치유’가 잘 팔린다. 놀라운 판매 수완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들은 ‘시대의 멘토’를 자처하며 재기 넘치고 뭉클한 말을 일삼아 왔다. “욕심 내려놓고 천천히 가면 된다”같은 감성의 언어로 트위터를 채우며 전국을 바삐 누볐다. 다 먹고살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긍휼히 여겨진다. 그러나 점차 대중은 학습 효과를 통해 아름다운 말은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너무 아름다운 조언은 그 말이 아무리 찬란해도 진의를 믿기 어려우며, 말의 성찬 속에서 치유는 치유를 대상화한다. 몇 마디 위로의 말과 명상으로 고난이 사라진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나, 우리는 경험칙을 통해 인생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고 있다.

힐링과 가장 가까운 불교 용어가 자비(慈悲)일 것이다. 기쁘게 하는 것을 자(慈),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비(悲)라 한다. ‘무소유’의 법정 스님은 언젠가 자비의 ‘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비'는 슬프다는 뜻보다도 ‘괴로워서 신음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인데, 우리 이웃의 괴로움을 보고 같이 신음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비’는 동정과는 다릅니다. 동정은 자기 자신은 상처받음 없이 남을 위로하려고 드는, 때로는 남을 위로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그런 심리 작용입니다. 그러나 신음은 동정을 넘어서 함께 앓는 것입니다.” 함께 신음하며 치유하지 않고, 누군가의 고통을 발판으로 삼는 것은 상도의가 아니다.

끊임없이 검증받으며 위선과 의태(擬態)의 껍질은 벗겨진다. 그 기간이 짧을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논란 며칠 만에 혜민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겠다”며 잠적에 들어갔다. 어쩌면 그를 비난하는 것은 성급한 중생의 부덕일지 모른다. 어느 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뜻밖의 ‘힐링’을 선사할지 누가 알겠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