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8] 이등병으로 징집된 칙임관

신상목 대표 2020. 1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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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체신부 공무국장 마쓰마에 시게요시(松前重義)에게 느닷없이 징집 전보가 날아든다. 공무국장은 전파 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칙임관(고위 공무원)의 자리다. 누가 봐도 43세의 그에게 날아든 이등병 소환장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그는 꼼짝없이 이등병 신분으로 남방 전선에 투입된다.

마쓰마에는 공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정통 기술 관료였다. 대미(對美) 개전 이후 악화 일로의 전황을 지켜보던 그는 승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다. 현대전은 정신력이 아니라 병기의 기술력, 인적 자원, 자원량으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과학 기술계 동료들과 미·일 간 생산력 및 자원량 조사에 착수한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대미전을 수행하려면 연간 최소 철강 600만t, 알루미늄 30만t, 동 16만t, 납 13만t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나, 당시 일본의 생산량은 철강 420만t, 동 7.8만t, 납 2.3만t에 그쳤고 알루미늄은 아예 해외에 원료를 의존해야 했다. 일본의 생산력은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했고 이는 군부가 주장하던 수치와 너무나 달랐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담은 보고서를 요로에 전달했고, 그의 이등병 소집은 이를 괘씸히 여긴 도조 총리의 사적 보복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을 다문 관료 사회와 함께 일본은 패전의 길을 질주했다.

관료의 소신이 보복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가 운영이 제대로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모 부처의 자료 무단 폐기를 적발한 감사원 보고가 있었다. 소신은커녕 불법행위를 감수해야 하는 관료 사회의 실상이 놀랍다. 정권 위세에 눌린 관료의 유구무언 가슴앓이 사정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개혁을 내세우며 보복성 인사와 감찰을 남발하고 상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고서라며 장관이 ‘너 죽을래’ 폭언을 내뱉었다는 작금의 관료 길들이기 상황은 국기 문란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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