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구상한 식민지 지식인에 놀랐다"

유석재 기자 2020. 11.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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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民世賞 수상자 선정
민세 안재홍 선생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사진) 선생의 민족 통합 정신을 기리는 ‘민세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지원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장)는 지난달까지 시민 사회 단체, 학술 단체, 지자체, 대학 등을 대상으로 민세상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민세상 심사위원회는 강지원 위원장과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상 사회 통합 부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이진한 고려대 교수, 김기철 조선일보 학술전문 기자(이상 학술 연구 부문)로 구성됐다. 심사위원회는 사회 통합 부문에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크리스챤아카데미를, 학술 연구 부문에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학술 연구 부문]

“세계화 구상한 식민지 지식인에 놀랐다”

국제정치학자이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인 하영선(73·사진)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2000년대 들어 식민지 시기 국제정치학을 연구하기 위해 당시 신문 논설을 정독했다. 그러다 민세 안재홍의 글에 눈이 번쩍 뜨였다. ‘민세 선집’을 자세히 검토하며 그를 연구하게 됐고, 2010년 연속 강좌 ‘역사 속의 젊은 그들’에서 민세를 크게 다뤘다.

/김지호 기자

“식민지 시기나 해방 전후 못지않게 국론이 분열된 요즘의 상황에서 민세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인물입니다. 이런 개인적 인연이 수상으로 이어져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 이사장은 ‘민세(民世)’라는 호부터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망국의 아픔을 예민하게 겪은 안재홍이 일본 유학 중 ‘민중의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뜻에서 스스로 붙인 것이다. 죽은 나라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개인아(我)를 벗어나 사회아, 민족아, 인류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민세주의’는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20세기 복합론'이었다.

민세가 주도한 1920년대의 좌우합작 운동인 신간회는 ‘극단을 뺀 통합’을 추구했으나 실패했다. 1930년대 만주사변과 일본의 군국주의화, 세계 대공황 속에서 민세는 안과 밖의 복합론인 ‘국제적 민족주의’를 제기했다. 하 이사장은 “나는 1990년대에 ‘자주적 세계화’라는 용어를 썼는데, 그땐 아직 민세에 대해서 잘 모를 때였다”며 “나중에 민세가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을 알고 대단히 시대를 앞서간 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나라도 없었던 상황에서 그런 걸 사유했다니 말이죠….”

하 이사장은 “민세의 민족주의는 당시의 저항적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국제적 민족주의’라 할 만하다”며 “그 안목과 비전에서 한 시대의 선도적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광복 이후 정치 세력화에 난관을 겪어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으나, 21세기 초의 동아시아 국제정치 지형에서도 민족주의와 세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민세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하 이사장은 ‘복합세계정치론’ ‘한국 외교사 바로보기’ 등의 저서를 통해 국제정치와 평화 이론, 북핵 문제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보기에 한일 관계에서 ‘죽창론’을 들고나오는 한국 외교는 아직도 저항 민족주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와 국제 문제를 양극화적인 시각으로 파악하면서 21세기 국제 무대 중심에 서기는 어려운데 참 답답합니다.”

그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 질서는 더 이상 개별 국가가 주인공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질서가 대두할 것이며 공생(共生)이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심사평 : 하영선 이사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로서 국제정치와 평화사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냈다. 국제정치를 복합주의 관점에서 심도 있게 연구했으며, 안재홍·김양수 등 일제강점기 자주적 근대화를 실천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삶을 조명했다. 안재홍의 복합주의가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치 지형에서도 귀중한 교훈을 제시한다는 고찰이었다. /심사위원 신용하·이진한·김기철

[사회 통합 부문]

“분열된 사회를 기독교 정신으로 치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백종국 이사장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로 갈라졌다는 각성이 있었어요.” 이른바 ‘민주화’가 이뤄질 무렵인 1987년 ‘하나의 공동체로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여기고, 복음으로 일치하는 기반을 조성해야겠다고 생각한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백종국 이사장 제공

백종국(67·사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이사장은 “기윤실은 정직과 인애, 공평을 핵심으로 검소와 절제의 실천으로 나아가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실천에 초점을 뒀다. ‘자발적 불편 실천’이 대표적 운동 중 하나였다. 쓰레기 분리수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생활 속 실천이었다. 공명선거 운동 등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공정성에 앞장섰고, 목회 세습 반대 운동도 벌였다.

정치학자인 백 이사장은 “민세 선생에 대해서는 서울대 대학원 시절 정윤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선배가 연구하는 것을 옆에서 봐 잘 알고 있다”며 “그분의 이름이 붙은 상을 저희가 받게 돼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백 이사장은 “다양한 방면의 운동을 해오면서 좋은 가치라도 실천이 반드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운동을 시작할 때 농담처럼 ‘우리는 소멸지향적 조직’이란 말이 나왔는데, 사회가 정직해진다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쉽지만 지금은 저희가 더 필요한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심사평 :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 실천과 신뢰받는 그리스도인 되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공동체 건설에 노력했다. 또한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통합에 힘써 왔다.

크리스챤아카데미 - 채수일 이사장

“대화 통해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윤리실천 운동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세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와도 통한다 생각합니다.” 채수일(68·사진)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은 “민세를 공부해 보니 통합을 위한 헌신이라는 점에서 크리스챤아카데미 설립자인 강원룡(1917~2006) 목사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1965년 창립한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사회의 양극화라는 현실의 타개를 위해 기독교의 사회적 실천을 통한 공공성 회복에 힘써 왔다. 독일 기독교의 사회운동을 모델로, ‘중간 집단’의 양성에 힘썼다.

채 이사장은 “중간 집단이라고 하니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지만, 대화를 통해 화해를 이끄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중간 집단은 학생·노동·여성·농촌·교회 다섯 분야에서 활동한다. 숱한 인재를 배출했으나, 1979년엔 중간 집단 교육을 맡은 간사들이 ‘의식화’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체포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크리스챤아카데미는 비인간화 해소와 종교 간 대화 활동에도 앞장섰다. 채 이사장은 “각 종단 예비 성직자 교육을 통해 서로 사귀고 이웃 종교에 대해 배우도록 했다”며 “독일 종교학자 한스 큉의 말처럼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로고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아이디어를 낸 장구다. 양면의 재질이 다르지만 뛰어난 소리를 내는 장구처럼 ‘다름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다.

심사평 : 크리스챤아카데미는 기독교의 사회 참여, 교회와 사회의 대화, 인간 소외 극복을 위한 인간화 실천에 힘썼다. 역시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통합에 노력해 왔다. /심사위원 손봉호·강지원·양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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