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넌 꼭 그러더라!"
잘 모르고 지내다가 문득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H가 묻는다.
“어디서 만나?”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분당에 살아. 그쪽에서 보기로 했어.” “넌 꼭 그러더라!” “응?”
H의 말에 의하면, 내가 약속 장소를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 정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중간에서라도 만나지. H는 내가 약속을 잡으면 그날 하루는 오고 가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아 그랬나? 그랬구나! 아니 근데 그게, 이쪽에는 딱히 만날 만한 데도 없고. 중간에서 만나면 서로 모르는 곳이라 헤맬 것 같아서. 만날 데가 왜 없어? 찾아보면 되지. H의 말을 들으며, 마땅한 장소를 떠올리다 보니 내가 뭘 어려워하는지 알게 됐다.
함께 만나서 뭘 할지, 음식으로는 뭐가 좋을지, 식당 분위기는 어떤 게 좋을지, 식사를 하고 난 후에는 어디로 향할지. 내가 윤곽을 잡아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만나서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취향을 공유한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건 아니다. 그 방향을 어느 정도는 내 쪽에서 주도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나 보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내가 먼 거리 이동을 자처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기대기 위해 그런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일상이 역동적으로 굴러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몰랐던 것이다. 이제 누군가 만나려면 정색하고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져 보는 연습을 해볼까.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가끔은 나도 뭔가를 준비해놓고 기다려 봐야겠다. 그 과정에서 나의 누추함과 빈약함을 드러내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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