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2020. 11. 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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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자질' 강조 않는 민주주의
'다수의 횡포' 횡행하고
평등에 대한 탐욕 탓에 갈등
민주주의 역사 짧은 한국
그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가
박지향 <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마치 인류가 고안해낸 정치 제도의 최고봉인 것처럼 배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는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지만 그것보다 나은 것도 없다”라는 재담을 남겼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평등한 권리다. 가장 간단한 정의에 의하면 성년에 도달한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한 표씩 행사하는 정치적 권리를 갖는 것, 그리하여 국가의 정책 결정에 모든 사람이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되는가?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철학자는 플라톤이었다. 아테네 민주정 시대를 직접 살아본 플라톤은 민주정이 현명한 사람들을 몰아낸다고 확신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 그리고 스파르타를 상대로 한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어리석음과 혼란 속에 패배를 자초한 아테네를 보고 내린 결론이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가 처음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건은 프랑스혁명이었는데, 민주주의가 폭도에 의한 통치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플라톤 이래의 불안이 현실로 드러났다. 프랑스혁명을 지켜본 영국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민주정에서는 격렬한 의견 대립이 있을 때마다 다수파가 소수파에 대해 가장 잔인한 억압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이론의 토대를 닦았다.

민주주의가 프랑스보다 순조롭게 발전해 보이는 곳이 있었다. 신생국가 미국이었다. 프랑스 정치가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30~1831년 미국에 건너가 집중 관찰한 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집필했다. 지금도 이 책은 미국에 관한 가장 탁월한 저서 가운데 하나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5년의 시차를 두고 집필됐는데 2부는 1부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훨씬 더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 토크빌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민주주의의 특성은 평등이었다. 흔히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자유와 평등을 지목하지만 그 둘은 현실에서 자주 충돌한다. 토크빌은 그것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빼앗기면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평등에 대한 열정은 “열렬하고 탐욕스럽고 지칠 줄 모르며 제어할 수 없다.” 그들은 자유 속에서의 평등을 요구하지만 그것을 획득할 수 없을 때는 “노예 상태에서의 평등”마저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름 돋는 관찰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플라톤 이후 많은 정치 사상가들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위험을 다수의 횡포와 질적 저하에서 찾았다. 공공성과 시민의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와 달리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질과 덕목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늘날 다수의 횡포는 다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말살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현상을 막고자 숙의민주주의가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소셜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숙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요즘 극성 친문들이 보여주듯이 오히려 상대편을 혐오하고 적대시하게 만드는 분열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오늘날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는 민주주의가 평등한 정치적 권리의 행사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학자들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핵심은 부의 분배에 대한 관심, 즉 결정권을 가진 다수 빈자가 소수에게 가하는 경제적 억압이라고 지적한다. 플라톤도 민주정에서는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이 격렬해질 것이며 그런 상황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단순히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와 민주 ‘공화국’을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문제점 때문이다.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그런대로 낙관한 것은 그것이 대중에게 정치적 학습을 제공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여 년 동안 민주주의를 학습한 미국 시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우리의 학습 기간은 훨씬 짧다.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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