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배터리 산업과 깨진 유리창

조현일 2020. 11. 1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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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있다.

우리 배터리산업을 보면서 드는 걱정이 이와 같다.

최근 미 포드차 최고경영자(CEO)는 "(배터리) 셀 제조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화재는 적어도 4년 전 전동카트에서 시작돼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을 초토화시킨 뒤 전기차산업으로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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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있다.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혀 범죄 발생이 늘고 종국에는 흉악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그 무질서를 몰라서 방치할까. ‘불편한 진실’이 뒤섞이면 어떨까. 아는 사람은 알지만 쉬쉬해서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 말이다. 대개 곪아 터진 뒤에 값비싼 비용을 치렀던 역사가 숱하다.

우리 배터리산업을 보면서 드는 걱정이 이와 같다. 미국 대선이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친환경 미래산업 관련 주식이 요동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터리다. 유럽에 이어 미국이 가세할 전기차(EV) 시장의 장밋빛 전망을 보는 것이다. 낙관적인 미래는 팩트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판 전기차산업 굴기(堀起·우뚝 섬)를 예고했다. 바이든 첫 임기에만 전통 차 메이커는 물론 제2 테슬라를 꿈꾸는 스타트업 다수가 전기차 수십종을 내놓을 것이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이 빅뱅에 쓰일 배터리를 감당할 곳은 한·중·일 3국밖에 없다. 세계적인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력, 생산력과 미국에 수조원을 투자할 자금력까지 갖춘 기업은 5∼6곳에 그친다. 이 중 3곳이 국내 기업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에 좋지 않은 징조가 쌓인다. 깨진 유리창처럼 말이다. 국내 기업 간 소송, 국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화재와 리콜, 해외 차 메이커들의 배터리 독립 행렬 등을 지켜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LG 제소로 시작된 SK와 기밀 침해 소송은 1년 반째다. 다음달 10일로 두번째 미뤄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판정은 계속 연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권 교체의 지체, 바이든의 전기차 육성 의지, 미국 차 메이커들의 우리 배터리 의존도 등을 감안하면 그렇다. 미국이 언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철저히 그들의 이익에 따를 것이다. 어쩌다 우리 미래가 미국의 이익 앞에 맡겨졌나. 우리 정부는 ‘미 관련 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초반부터 중재에 손을 놓았다.

차 메이커의 배터리 독립(자체생산) 움직임은 예고된 악재이자 연장선이다. 최근 미 포드차 최고경영자(CEO)는 “(배터리) 셀 제조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불과 3개월 전 “이익이 없다”며 일축했던 전임자 발언을 뒤집었다.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폴크스바겐 등이 이미 선언한 내용이다. 주력 납품사 두 곳이 사업 존망을 걸고 싸우는데 대책을 고민하지 않을 기업이 있을까. 향후 배터리사와 주도권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화재는 또 무엇인가. LG와 삼성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 불이 나 리콜과 집단소송이 시작되는 중이다. 배터리 화재는 적어도 4년 전 전동카트에서 시작돼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을 초토화시킨 뒤 전기차산업으로 확산했다. 그 사이 정부, 업계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막을 방법을 찾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렸다. “답을 정해놓은 분위기였습니다. 특정 기업을 거론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작년 ESS 화재 민관합동조사단을 접촉했던 한 전문가가 토로한 내용이다. 어제 정부는 ESS업계 손실 보전 방안을 발표했다. 깨진 유리창의 대가는 이렇게 혈세를 투입해 사회가 치른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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