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왕도(王道)를 찾아

남상훈 2020. 11. 1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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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어의 왕도(王道)'라는 영어교재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비결이 따로 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 법한데, 아일랜드에 전하는 설화 가운데 다섯 아들 이야기는 왕도에 대한 퍽이나 그럴싸한 묘사이다.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쥘 수 없는 것이며,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갈라치기 전술을 쓰면 피아가 분명해져 대처하기는 간편할지 몰라도 왕도로 들어서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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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어의 왕도(王道)’라는 영어교재가 있었다. 책 표지에 ‘Royal Road’가 또렷이 찍혀 있던 것으로 보아 외국어를 직역했던 듯하다.

그러나 ‘왕도(王道)’는 본래 동양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공자의 덕치(德治)를 거쳐 맹자에 이르러 본격화되어, 흔히 힘에 의해 다스리는 패도(覇道)에 대한 상대적인 말로 쓰였다. 동서양의 용례가 다르기는 해도, 왕도라는 말에는 이상적인 규범 혹은 비법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비결이 따로 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 법한데, 아일랜드에 전하는 설화 가운데 다섯 아들 이야기는 왕도에 대한 퍽이나 그럴싸한 묘사이다. 에오카이드 왕의 다섯 아들이 사냥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왕자들은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차례로 물을 찾아 나섰는데, 마침내 찾은 샘 옆에는 어느 노파가 지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의 추레한 행색이었다. 그런데 큰 왕자가 물을 달라고 하자 물을 떠 가려면 자기 뺨에 입을 맞추어야만 한다고 했다. 왕자는 차라리 목말라 죽는 게 낫겠다며 돌아왔다. 둘째, 셋째, 넷째 왕자도 똑같은 수순을 거쳐 빈손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막내 왕자가 나섰다.

그는 노파의 요구를 받고는 입맞춤이 대수냐며 노파를 껴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왕자가 노파를 안고 입맞춤을 하고 물러서서 보니 노파는 어느새 절세의 미녀가 되어 있었다. 막내 왕자가 그녀의 정체를 묻자, 그녀는 자신이 바로 ‘왕도’(Royal Rule)라고 대답했다. 왕자가 처음에는 구역질나는 노파를 보았으나, 이내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는데 왕 또한 그렇다고 했다.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쥘 수 없는 것이며,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먼 나라 미국에서, ‘합중국(合衆國)’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파열음이 들린다. 이쪽을 지지하는 쪽과 저쪽을 지지하는 쪽이 극명하게 갈리는 게, 태평양 이쪽저쪽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갈라치기 전술을 쓰면 피아가 분명해져 대처하기는 간편할지 몰라도 왕도로 들어서기는 어렵다. 왕도의 기본은 피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왕이 될 그릇을 자부하는 이라면, 차라리 목말라 죽는 게 낫겠다는 객기를 걷어내고 노파에게서 절세미인을 볼 수 있기까지 치열하게 싸울 일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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