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열린 사우디·이라크..중동국들 '합종연횡' 가속

구정은 선임기자 2020. 11. 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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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에 중점 둔 빈 살만
30년간 닫혔던 빗장 열어
에너지 등 13개 협정 체결
농지 개발 추진 '식량 안보' 뜻
방어막 잃은 이란 선택 주목

[경향신문]

걸프전 이후 30년 동안 닫혀 있던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국경이 열렸다. 미국 정부가 바뀌고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이 손잡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사우디·이라크의 관계 변화는 역내에 또 다른 정치·경제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이라크와 이어지는 사우디 북부 아라르 국경검문소가 문을 열었다. 오트만 알가니미 이라크 내무장관과 압둘아지즈 알샴리 이라크 주재 사우디 대사 등 양국 관리들이 국경을 걸어서 넘었고, 줄지어 대기하고 있던 트럭들이 양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두 나라의 국경 통행은 199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금지됐다. 2003년 미국의 공격으로 사담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이라크와 사우디의 관계는 풀리지 않았다. 이라크 민선정부가 친이란계 시아파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중동 복판 권력 공백 지대가 된 이라크에서 사우디와 이란은 일종의 대리전을 벌여왔다.

사우디에서 경제개발과 개혁을 내세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뒤 이라크와 관계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2015년 이라크에 사우디 대사관이 문을 열었고 2017년 사우디 외교장관이 수십년 만에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이어 하이데르 알아바디 당시 이라크 총리가 리야드를 답방했다. 같은 해 양국 간 하늘길도 열렸다.

두 나라 내부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이란의 지나친 간섭으로 이라크에서 반이란 감정이 높아진 것이다. 사우디는 그 틈을 비집고 이라크에 손을 내밀었을 뿐 아니라, 이란과도 관계를 은밀하게 개선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올 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암살하면서 판이 깨질 뻔했지만 무스타파 알카디미 이라크 총리는 무함마드 왕세자와 긴밀한 대화를 이어왔다. 올 7월 두 나라는 에너지·스포츠 투자협정에 서명했고 지난 10일에는 인프라·에너지·전기 등 13개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안에서 사우디에 이은 2위 산유국이지만 시설이 낙후해 있다. 사우디의 돈이 들어가고 이라크의 산유량이 늘어나면 석유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는 현금이 필요하지만, 사우디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식량 안보다. 사우디는 이라크 남쪽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무탄나, 안바르 등 4개 주에 100만ha 면적의 농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와 사우디의 관계가 풀리면 중동 정세는 크게 달라진다. 특히 이란은 최대 방어막을 잃는다. 미국의 중동 전문 매체 알모니터는 “이란은 이라크가 사우디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도록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복원되면 중동 정국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사우디도 그 트랙에 오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분간은 곡절이 이어지겠지만 실리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물’이다. 사막화가 심해지고 있는 이라크에서 지하수를 빼내 대규모로 작물을 키우면 담수 고갈과 환경재앙을 부를 수 있다. 사막화와 물 부족으로 농촌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시리아 내전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하수를 관리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친이란계 야당들은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며 사우디의 투자에 반대하고 있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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