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넘어북한] 김정은 우상화 본격화됐다

박수성 2020. 11.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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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 열병식 계기로 김일성,김정일 빠진 '김정은 조선' 부각
노동신문 정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김정은 조선'의 근간 공식화
인민 사랑 내세워 김정은 위대성을 대대적 선전 예상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우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북제재 장기화 속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자연재해 복구까지 겹쳐 내부 정치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8일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김정은 조선'의 근간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에 대한 본격적인 우상화가 예고되고 있어 이번 <창넘어 북한>은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노동신문 행간 읽기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부쩍 강조하는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노동신문 읽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10일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열병식을 기억하시죠?

10월 16일 방송된 창넘어 북한에서는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하며 울먹였던 모습이나, '괴물 같은 ICBM' 보다, 더 이상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에 기대지 않는 김정은의 모습이 특별히 부각됐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열병식을 중계하는 북한 아나운서가 '김정은 조선'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김정은에게 북한은 더 이상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김정은만의 땅이요, 김정은만의 나라가 됐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한층 부각하는 글이 어제 노동신문에 1면 전면으로 실렸습니다. 정론 형식의 글입니다.

노동신문은 사설이나 정론이라는 형식의 글을 자주 활용합니다. 사설은 노동당의 중요 정책을 해설하고 강조하는 목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비교적 논리적이고 설명이 많은 차분한 방식의 글입니다.

이에 비해 정론이라는 글은 사설에 비해 훨씬 감성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파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목청을 높여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문장들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법률적, 제도적으로 확립되진 않았지만 북한 체제에서 한층 더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할 때 사용하는 형식입니다. 북한 체제 특유의 선전선동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글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설보다 오히려 정론이 더 비중이 큰 글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노동신문에 실리는 글의 형식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건 북한에서 두 가지 형식의 글이 북한 체제 운영에서 핵심적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창넘어 북한에서 노동신문 읽기를 시도하는 건 어제 노동신문 1면에 전면으로 실린 “인민의 목소리-우리 원수님!"이라는 정론 형식의 글이 북한이 앞으로 김정은 우상화를 노골적으로 진행할 것임을 예고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더 이상 김일성-김정일 조선이 아니라 '인민을 한없이 사랑하는 김정은만의 조선'으로 바뀔 전망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을 한 걸로 유명합니다. 절대 왕정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어서 역사서에서 많이 인용되는 문구입니다.

'김정은 조선'이라는 글 귀는 바로 '북한이 곧 김정은'임을 보여주는 표현인 거죠. 한술 더 떠서 '북한이 곧 김정은'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나라 전체보다 김정은이 더 중요하다고 북한 이데올로그들이 강조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잠시 옆길로 샜습니다.

어제 자 정론은 지난달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울먹이면서 인민들에게 감사하다고 한 대목을 부각시키면서 열병식 날이 김정은과 북한 주민 사이에 '새로운 혈연관계가 이루어진 역사의 분수령'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정론은 이어 ‘김정은 조선’이 김위원장과 주민 사이에 혼연일체의 힘이 있기에 코로나19와 자연재해 극복은 물론 한창 진행 중인 '80일 전투'에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뜻으로 한 모습이 되고 정으로 한 피줄이 된 위대한 김정은 조선의 일심단결의 위력"이라는 겁니다.

물론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이 이번에 처음 사용된 건 아닙니다. 뒤에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돼 왔는지를 소개 드리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제 자 정론은 김정은이 집권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인민대중제일주의'가 바로 '김정은 조선'의 근간이라고 공식화했습니다. 제가 북한이 앞으로 '김정은 조선'을 훨씬 더 자주, 거리낌 없이 사용할 것으로 예측한 근거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김정은이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이데올로기입니다. 3대세습이 가능했던 것은 김위원장이 인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이지 김일성의 손자, 김정일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정론은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김정은 조선'의 근간이라는 주장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유명해진 은파군 대청리에 가보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오시였던 그 날의 차바퀴자리가 찍힌 흙을 붉은 천주머니에 정히 싸서 가보처럼 간직한 농민들이 있고 연로한 몸이지만 우리 원수님 오시었던 길을 매일 아침 정갈하게 쓰는 할머니도 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노동신문이 정론을 실은 가장 큰 목적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이 북한 공식 매체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3년 7월로 확인됩니다. 노동신문은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라는 글에서 ‘김일성,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엔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강철의 령장이시다’라는 글에서 앞의 글과 같은 맥락으로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후 북한은 2014년 정론을 통해 '대를 이은 백두산 장군의 국가'라는 의미에서 '김정은 조선'을 썼고 2015년에도 백두대국과 청년강국으로서의 ‘김정은 조선’을 강조했습니다. 2016년의 경우 김정은 조선은 핵 수소탄 첫 시험, 광명성-4호 발사 등 핵 개발과 관련된 축하 연설이나 글에서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때까지 '김정은 조선'은 '김일성과 김정일로부터 북한을 물려받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김정은 조선'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싶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쓰기엔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열병식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더 이상 북한은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조선'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가 없다고 해도 '김정은 조선'이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북한 출신의 한 전문가는 올해 중앙당의 과제로 김정은 우상화가 결정됐고 선전선동부가 이를 앞장서서 집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김정은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나온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합니다.

올해 개정 발간된 김정일에 대한 책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략력’에는 김정일 말년인 2009년에 진행된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김정은이 주도해 경제강국건설에 비약과 혁신을 가져왔다는 대목이 새로 실렸습니다. 2009년이면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 전이었는데도, 당원들과 인민들이 김정은의 위인상과 업적의 위대성에 매혹됐다는 겁니다. 2015년 판 ‘조선을 이끌어 70년’에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김정은은 2019년 3월 전국 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며 과도한 우상화를 자제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작년의 일이었는데 올해는 자기가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듯한 모습입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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