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을 폭우

조운찬 논설위원 2020. 11.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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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사거리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을엔 우울하다. 떨어지는 낙엽에 마음이 울적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물을 훔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가을을 탄다. 사람들은 왜 가을을 슬퍼할까.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가을에는 여름철 성했던 태양의 기운이 소멸해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겨울보다 가을을 더 슬퍼하는 것은 노쇠한 칠팔십대보다 쇠약해가는 오륙십대가 느끼는 슬픔이 더 큰 것과 이치가 같다고 말한다. 슬픔만이 아니다. 가을엔 삶의 무상함도 더 사무치기 마련이다. ‘봄엔 여자가 그리워하고 가을엔 남자가 슬퍼한다’는 속담은 허튼말이 아니다.

낙엽 지는 가을에 비까지 내리면 마음은 더 심란해진다.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골 농부에게 가을비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 여행 중에 만난 비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통일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여관에서 지었다는 한시는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늦가을 여관에 내리는 가을비/ 고요한 밤 차가운 창에 등불 밝히니/ 가련하다, 시름 속에 앉은 내 모습/ 삼매에 든 중과 다름없네(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

지난달 서울의 강수량은 ‘영(0)’이었다. 가을비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와 시는 많지만, 실제 가을비는 흔치 않다. 가을비에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수량도 적다. 한데 엊그제 가을 폭우가 쏟아졌다. 19일 서울의 하루 강수량(68.2㎜)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서울 고궁 뜨락에는 단풍나무 잎이 수북이 쌓였다. 강원도 원주 반계리의 800년 된 은행나무는 무성했던 노란 이파리를 다 떨어냈다. 폭우는 가을을 물리친 무사와 같았다.

비가 그치면서 이번 주말의 아침과 낮 기온은 주중보다 10도 이상 떨어진다. 이제 본격 겨울행이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행히 올겨울은 크게 춥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예보·예측이 불가능한 감염병 확산이다. 한 해 동안 확산과 소강을 반복하고 있는 코로나19는 벌써 3차 유행 단계에 들어갔다. 겨울 독감까지 겹치면 큰일이다. 우울한 가을에서 이어지는 겨울철 최악의 감염한파는 막아야 한다. 올해 월동준비 제1호는 ‘방역수칙 준수’가 돼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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