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칼럼] 마젤란 해협 발견 500주년 그리고 언택트 / 김순배

한겨레 2020. 11. 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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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심하게 출렁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얼마 전 마젤란 해협 인근의 푼타아레나스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킹크랩을 먹었다.

마젤란은 해협 발견이 미칠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짐작했을까? 나는 줌과 비대면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다만, 마젤란 해협이든 줌이든 서로 관심이 있어야 발견하고, 만나고, 또 더 통하지 않을까? 해협 발견 500주년 관련 기사가 최근에 한국에서 나왔는지 찾아봤는데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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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칼럼]

김순배ㅣ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배가 심하게 출렁였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갑판에 나가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몇 해 전 가족여행의 기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500년 전, 그 거친 바다를 지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항로가 발견됐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쪽을 지나는 마젤란 해협이다. 마젤란 일행은 이로써, 유럽의 스페인을 출발해 중남미를 거쳐 아시아를 잇는 항로를 찾아냈다. 1520년 11월1일 일행이 처음 진입했던 그 해협의 파도가 얼마나 거칠었으면, 해협을 지나 발견한 바다가 잔잔하다고 ‘태평양’(Pacific Oce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해협이 이제 발견 500주년을 맞았다.

500년 전 해상무역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 그 발견의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금 내가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 마젤란 일행이 약 3년간의 항해 끝에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기록은 그 역사적 의미를 상상하게 만든다. 중남미 대륙의 허리를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가 1914년 개통되고 항공 운항 등으로 의미가 퇴색될 때까지, 마젤란 해협은 유럽과 중남미, 아시아를 연결하며 해상무역과 식민지 약탈의 통로가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얼마 전 마젤란 해협 인근의 푼타아레나스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킹크랩을 먹었다. 수산업을 하는 이웃이 건네줬는데, 어찌나 큰지 큰 솥에도 한 마리가 다 안 들어가 다리를 떼어내 따로 삶아 먹었다. 지구 반대편의 그 킹크랩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만난다.

지금 내게는 마젤란 해협이나 거기서 잡히는 거대한 킹크랩보다 줌(Zoom)과 엠에스 팀즈(MS Teams), 구글 미트(Meet)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훨씬 더 경이롭다. 마젤란 일행이 평온하다고 한 태평양은 내게는 너무 원망스럽다. 한국과 중남미 대륙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한국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연 등을 기획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비행기 안에서만 적어도 24시간이 꼬박 걸린다. 비싼 티켓에 1회 환승을 해도, 환승 시간 등을 고려하면 30시간 가까이 걸린다. 어디로 가면 빠르냐고 묻지만, 유럽을 거치나 미국에서 환승하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갈아타나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 처음 온 사람들은 “진짜 멀다”고 말하고,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더 못 다니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즈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쓰면서 한국이 많이 가까워졌다. 지난달, 한국의 한 대학에 줌으로 연결해 묻고 답하고 실시간 특강을 했다. 이번 주에는 우리가 칠레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한국에서 전문가가 강연하고,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에서 접속한다. 그 멀던 태평양을 건너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비싼 비행기 삯과 호텔비, 장거리 비행 등 초청에 드는 여러 골칫거리가 해결됐다. 코로나19 탓에 지금 경주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로 위안을 받는다.

화상회의 기술이 올해 생겨난 건 아니지만 쓰지 않다 보니 내게는 의미도 없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에서 전문가를 모셔 놓고 대규모 시위 탓에 휴교를 하는 바람에 강연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만 해도 안전한 장소를 빌릴 궁리만 했지, 화상회의로 실시간 강연할 생각을 못 하고 결국 녹화한 뒤 나중에 틀어줬다.

그러니,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지금 내게는 줌이 나와 한국을 잇는 마젤란 해협이다. 마젤란은 해협 발견이 미칠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짐작했을까? 나는 줌과 비대면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다만, 마젤란 해협이든 줌이든 서로 관심이 있어야 발견하고, 만나고, 또 더 통하지 않을까? 해협 발견 500주년 관련 기사가 최근에 한국에서 나왔는지 찾아봤는데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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