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편집인의 눈] 1년간 <한겨레>의 거의 모든 기사를 읽었다 / 홍성수

한겨레 2020. 11.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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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

홍성수ㅣ​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포퓰리즘의 시대라지만, 건전한 공론장은 중요하며 공론을 만드는 힘은 여전히 언론에 있다는 생각이다. 대안 미디어의 가치를 넉넉히 인정하더라도, 전통 언론사의 역할이 온전히 대체될 수는 없다. 그렇게 생성된 기사들은 국가와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언론이 문제다.”

에스엔에스(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수없이 만나게 되는 말이다. 하긴 나도 종종 언론이 문제라고 말해왔다. 요즘도 “에효, 이것도 기사라고…”라는 혼잣말을 하루에 최소 세 번은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만큼 공허한 얘기가 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은 무엇인가? 한국에 언론사가 1만개가 넘는다는데 말이다. 언론사 전체가 문제인가 아니면 특정 기사가 문제인가? 두 개의 포털에 송고되는 기사만 하루에 수만개라는데 말이다.

언론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맡아달라’는 제안에 1년간 <한겨레>의 시민편집인 직을 수행했다. <한겨레> 종이신문 구독을 시작했고 1년 동안 거의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었다. 포털로 <한겨레>를 접했을 때는 논조에 동의하기 어려운 기사도 종종 있었고 불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세계는 구닥다리 종이신문에 있었다. 종이신문은 인터넷으로는 볼 수 없었던 반짝반짝한 기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언론이 문제다”라는 코멘트가 달린 기사들이 에스엔에스에서 비난 세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좋은 기사”라고 딱지를 붙여 광화문광장에 뿌리는 것으로 맞대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비교를 위해 지난 1년간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꼼꼼히 봤다. 포털 대신 되도록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앱을 깔아 열람해보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어떤 언론사의 논조는 한 토막 기사가 아니라 여러 기사의 ‘묶음’이 홈페이지에서 편집된 상태에서만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포퓰리즘의 시대라지만, 건전한 공론장은 중요하며 공론을 만드는 힘은 여전히 언론에 있다는 생각이다. 대안 미디어의 가치를 넉넉히 인정하더라도, 전통 언론사의 역할이 온전히 대체될 수는 없다. 잘 훈련된 기자들이 치밀한 취재 계획을 세우고, 오랜 시간 구축해온 노하우와 정보망을 활용하여 발로 뛴 기사를 생산해내면, 이것을 다시 노련한 베테랑 기자들이 검증하여 기사 한 편을 내놓는 전통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대체 불가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기사들은 국가와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코로나19 확산의 이면에 기후변화가 있음을 밝혀내는 일, 1970년대 전태일 시대의 공장의 암울한 현실을 2020년대 웹툰 스튜디오에서 찾아내는 일, 위안부 운동의 명암을 되돌아보기 위해 전문가·활동가들의 기고 연재를 조직해내는 일,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의 현실, 10대 생존 육아의 현장, 노인 노동의 어두운 이면, 비정규직 문제가 앙상한 공정성 담론에 갇혀 있을 때 현장의 당사자들을 찾아가 마이크를 쥐여주는 일, 그린 뉴딜의 문제점을 들춰내는 일, 병상 부족 문제가 터졌을 때 공공의료 정책이 애초에 문제였음을 차분하게 짚어내는 일, 엔(n)번방 잠입 취재까지 불사해가며 사태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치는 일, 코로나19에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일, 감염병의 시대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일, 기후위기 문제는 끝장을 보겠다며 온실가스 수치를 매주 지면에 알리는 일, 스포츠 폭력 사건의 이면에 있는 엘리트 스포츠의 근본적인 문제를 들춰내는 일, 국회의원 가족 회사 비리의 역사를 치밀하게 추적하면서 이해충돌방지법 입법의 실기가 원인이었음을 고발하는 일…. 이런 일들을 누가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종이신문을 봐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언론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사를 많이 써도 누구 편을 들어주는 기사 한두 개에 전체 평가가 갈린다는 것을, 포털에 걸려 있는 자극적인 제목의 질 낮은 기사가 그 언론사의 얼굴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대문짝만한 신문을 펴놓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찾아보면 좋은 기사들이 많다고 항변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언론에서 미래를 찾고자 한다면,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어도 이 엄연한 현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칼럼에 언급된 기사들은 지난 1년간 열린편집위원회가 ‘이달의 좋은 기사’로 선정한 것들입니다.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신 위원님들과 적극 지원해주신 <한겨레> 관계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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