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수익 나누는 금융기관 '건강한 공동체' 원동력이죠"

서혜빈 2020. 11.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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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캐나다 커뮤니티 포워드 재단 도브잔스키 이사장
크리스 도브잔스키 대표. 그는 캐나다 최대 신용협동조합인 밴시티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캐나다 시민은행 대표를 지낸 임팩트 투자 전문가이자 사회연대금융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다. 사진 이주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경제위기는 언제나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직격탄을 던져요. 지역 공동체가 그 충격을 함께 안아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겁니다.”

지난 5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캠퍼스에서 만난 크리스 도브잔스키(69) 캐나다 커뮤니티 포워드 재단 이사장은 지역 공동체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일흔인 그는 사회적 금융 생태계 발전을 위해 평생을 힘써온 ‘괴짜 경제학자’다. 국내 첫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인 경기도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 입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8월 한국에 왔다.

그는 멕시코 외환위기, 석유파동,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활동했다. 1976년 멕시코 외환위기 현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합류한 멕시코중앙은행 산하 경제대응 테스크포스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무자비한 개입을 경험했다. 캐나다로 막 돌아왔을 때는 석유파동으로 집과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의 어려움을 지켜봤다. 이론과 실무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어 많은 곳에서 일자리를 제의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1984년 밴쿠버 신용협동조합(신협)인 ‘밴시티’로 향했다. 주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경영철학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경제위기라는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려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사회 중심 금융경제가 해법이라 생각했죠.”

캐나다 몬트리올 콘코디아대학에서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세계 경제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생산과 소비 욕망을 부추기고, 투기와 이윤만을 좇는 전통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깨달았다. “주민들이 빚 때문에 직업과 집을 잃으면 지역사회가 돌아가지 않아요. 그러면 예금을 하지 않을 거고, 신협의 존재도 위태로워지겠죠.”

밴쿠버 신협 30년 몸담은 뒤

5년 전 퇴직해 재단 만들어

지역 협동조합 등 장기저리대출

“분열된 사회, 지속할 수 없어

포용 협력으로 어려움 극복을”

70년대 IMF 무자비한 개입 경험

그는 밴시티에서 1994년부터 매년 수익의 30%를 지역 공동체 유지에 투자하는 ‘성과 공유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신협의 수익이 지역사회로 흘러가 머무를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조합원과 지역 사회단체에 3억 6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기부했다. 이렇게 투자한 돈은 밴쿠버로 건너온 시리아 난민이 작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기부하는 지역의 비영리단체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쓰였다. 지난해에는 1538호의 사회주택 개발을 위해 대출금 1200만 달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캐나다 전 지역 경제가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밴시티는 어려움을 비껴갔어요. 오히려 수익을 낼 수 있었죠.” 당시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가 웃으며 말했다.

30년을 몸담은 밴시티에서 2015년 은퇴한 그는 현재 커뮤니티 포워드 재단 이사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힘쓰는 지역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장기저리대출을 제공한다. 어린이집, 노숙인 쉼터 등 지역에서 꼭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는 사회단체들이 부동산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지역자산화’를 목표로 한다.

거시경제와 지역경제에 대한 폭넓은 시야,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 사회연대금융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성장 환경에서 싹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역을 한 그의 부모는 전쟁 후 생계를 위해 폴란드에서부터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지로 옮겨 다녔다. 항상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탓에 우울한 아이였지만, 다른 이민자들과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면서 협동의 정신을 배웠다. “제게 협동은 생존의 문제였죠. 여러 지역에 정착하면서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폴란드 이민자들과 함께 대가족을 꾸려 생활한 캐나다 이민 초기 모습.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세살의 크리스 도브잔스키. 사진 크리스 도브잔스키 제공.
베트남전 평화시위에 참석한 열여섯의 크리스 도브잔스키. 사진 크리스 도브잔스키 제공.

코로나19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이 흔해진 분열의 시대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분열되면 그 사회는 지속하지 못했어요. 우리 조상들은 포용과 협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왔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감염병을 핑계로 차별을 합리화하고, 편견을 정당화해요. 그런데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어려울수록 포용, 협동, 연대라는 가치가 강조돼야 합니다. 저는 사회가 조금 더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요.”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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