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 R&D 선정한다더니..2년만에 폐기

이새봄 2020. 11. 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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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오픈크라우드 R&D' 헛발질
일반 국민 포함 집단지성으로
국가 R&D과제기획 명분 출범
이해 힘든 난해한 주제로 일관
홈피 참여 저조해 결국 폐쇄
과기계 "전문 R&D에 국민참여
과학인에겐 말이 안되는 얘기
과학에 대한 정부 이해부족 탓"
"집단지성으로 국민과 함께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선정하겠다"며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오픈 크라우드 R&D' 프로젝트가 출범 2년 만에 폐기 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일반 국민을 포함한 집단지성을 통해 국가 R&D 과제를 공동으로 기획하는 '개방형 크라우드 R&D' 정책을 발표하고, 한국연구재단 기획마루 홈페이지에 '오픈 크라우드' 페이지를 개설했다. 오픈 크라우드 페이지에 R&D 과제 후보군을 게시한 뒤 국민과 전문가들이 게시판에 글이나 댓글을 남기고 설문조사와 온라인 토론 등에 참여해 R&D 과제 선정에 동참하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과거 R&D 과제 기획에 전문가 소수만 의견을 제시해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오픈 크라우드 방식을 도입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과제 기획에 반영해 연구자 중심 R&D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R&D 과제·기획 선정에 국민을 참여시킨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지난 2년간 홈페이지가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정부가 선정한 '미래 선도 기술개발사업' 10개 과제 중 7개 과제를 웹사이트에 올려 일반 국민의 참여를 유도했지만 과제에 참여한 토론자는 183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도 휴먼플러스융합연구개발 챌린지 시범사업 7개 과제 중 6개 과제를 웹사이트에 올리며 '오픈 크라우드 R&D'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하지만 게시판에 들어온 토론자는 17명에 그쳤다. 전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던 홈페이지였음에도 사실상 참여자가 거의 없던 셈이다. 이후 사이트 관리 자체를 거의 하지 않다가 결국 올 들어 오픈 크라우드 R&D 페이지가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활용되지 않다보니 더 이상 시스템을 열어놓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폐쇄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기정통부가 더 이상 개방형 크라우드 기획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년 만에 오픈 크라우드 R&D가 중단된 데 대해 과학기술계는 전문적인 연구과제 기획에 일반 국민의 집단지성을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과학기술 R&D 사업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관련 지식과 이해가 기반되지 않은 집단지성은 집단지성이 아닌 '군중심리'에 가깝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게 사이트 폐쇄를 통해 이번에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과학계 관계자도 "당장 많은 돈을 들여 진행하는 전문적인 과학 R&D를 국민 참여형으로 진행한다는 게 언뜻 보면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과학인 측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며 "도대체 전문 과학 R&D를 국민에게 묻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실제로 2018년 정부가 선정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미래 선도기술 개발사업 주제는 '악성종양의 선택적 광역학 치료를 위한 체내 삽입형 마이크로 LED 융합기술 개발' '나노융합 전자빔 기반 자외선 C 플랫폼 기술 개발' 등으로 일반 국민은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주제였다. 정부는 오픈 크라우드 R&D를 추진할 때 가장 유사한 해외 사례로 'IBM 이노베이션 잼'을 들었다. 이노베이션 잼은 IBM 직원뿐만 아니라 임직원 가족, 전문가, 고객, 비즈니스 파트너 등 최대 15만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온라인 토론 프로그램이자 대규모 집단지성 프로젝트다. IBM은 이노베이션 잼을 통해 스마트폰 대중교통 정보 시스템, 실시간 번역 시스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아내 사업화에 성공했다. 이노베이션 잼과 유사한 효과를 누리려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선정하는 한편 해당 분야에 관심과 지식이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참여시켜야 한다. 오픈 크라우드 R&D는 결과적으로 두 가지 전제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게 과학기술계 판단이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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