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골프당 탄생..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이름 바꿔

도쿄/이태동 특파원 2020. 11. 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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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영방송 NHK(일본방송협회)에 원치 않는 수신료를 내는 게 부당하다며 창당해 국회의원까지 배출한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약칭 N국당)’이 갑자기 내년 1월 1일부터 ‘골프당’으로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NHK로부터…’라는 기존 이름을 괄호 안에 남겨 놓기로 했지만, 약칭에선 그냥 ‘골프당’이다.

도쿄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선거 운동을 돕고 있는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당원.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홈페이지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은 지난 13일 당 정례 회견을 통해 이렇게 밝히면서 내년으로 예상되는 중의원(일본 국회 하원에 해당) 선거를 새 이름 ‘골프당’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런 결정에 NHK 반대를 외치며 모였던 지지자들은 당황한 모양새다.

전직 NHK 직원 다치바나 다카시(53)가 지난 2013년 만든 N국당은 작년 7월 참의원(상원에 해당) 선거에서 깜짝 선전을 했다. 일반 선거구에서 총 득표율 3.02%(약 152만표), 비례 선거구에서 총 1.97%(약 98만표)를 기록하며 당 대표인 다치바나가 비례 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동시에 공직선거법상 법정 정당으로도 인정받게 됐다. 1994년 정당 제도가 법제화된 이후 기타 단체 신분으로 의석을 획득하며 법정 정당이 된 건 N국당이 처음이었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간사장 우에스기 다카시(왼쪽)와 대표 다치바나 다카시가 활짝 웃는 모습.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홈페이지

NHK 수신료에 대한 반감을 잘 공략한 덕을 봤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공영방송 수신료 지불이 사실상 의무화돼 있다. 집에 NHK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TV나 휴대폰 등이 있기만 해도 수신 계약을 해야 한다. 요금은 한 달에 지상파만 약 1만3000원 꼴이고 위성방송까지 포함하면 2만3000원 정도다. “TV도 안보는데 돈을 왜 내냐”며 이 계약을 거부하거나 계약 후 체불 중인 인원이 전 국민의 20% 가까이 된다. 전기세에 포함돼 청구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수신료를 별도 징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수신료 거부자들과 NHK의 위탁을 받아 계약·수금을 독촉하는 징수원 사이에 실랑이가 자주 벌어지면서 NHK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부자들 사이에선 ‘우리 집이 아니라 친구집이라고 하라’ ‘일본어를 못 하는 척 하라’ 등 징수원 퇴치 매뉴얼이 존재할 정도다.

다치바나는 이런 분위기를 잘 읽고 ‘NHK를 쳐부순다!’는 자극적 구호와 함께 ‘NHK 수신료 안내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예상을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당선 후 자기 의원실에 TV를 설치한 뒤 NHK와 수신 계약을 했다가 일부러 체불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진정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다치바나 다카시 대표가 지난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을 통해 '당명 변경'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골프 이슈를 다뤄 외연을 확장하면 NHK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치바나 다카시 유튜브 캡처

이랬던 N국당이 존재 이유나 다름 없는 ‘NHK로부터…' 대신 뜬금없이 골프를 앞세운다고 하자 지지자들은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다. N국당 측 설명은 “다 NHK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이다. 다치바나 대표는 유튜브 영상에서 “골프를 통해 국민 관심을 집중시키고 좀 더 세력을 넓히면 NHK와 관련된 재판 등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고, 그렇게 되면 NHK를 공격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당명을 변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왜 하필 골프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선 설명이 분명치 않다. 다치바나 대표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안전한 스포츠’라는 이유를 들면서 “골프장 이용세금 문제, 공무원 골프 금지 등 정책을 다룰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외연 확장과 연관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귀족 스포츠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만큼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지도 못한데다, 골프 인구(600만)를 다 합쳐도 수신 거부 인구보다 적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N국당 간사장인 우에스기 다카시(52)와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에스기는 6년째 ‘일본 골프 개혁 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고 도쿄스포츠가 보도했다. 골프당이 되면 앞으로 대표와 간사장 등이 국민 혈세로 골프를 쳐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치바나 대표는 “골프당이 된다 해도 NHK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번처럼 선거 때마다 정책 사안을 추가하는 형태로 당명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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