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루이뷔통이나 베르사체 광고가 우리 신문에 안들어오는지 아냐?"

2020. 11. 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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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전국시사만화협회 20년의 발자취를 기록하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예전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에도 만평이 실렸다. 웬만한 일간지엔 만평 코너가 있었고, 한컷이든 네 컷이든 종이 신문을 든 어느 독자들은 시사만평부터 찾아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신문사 화백실은 오후 3~4시만 되면 분주해졌다. 내일 조간, 석간 신문에 나갈 만평을 그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 내고, 만화를 그리고, 색을 입히기 위해서다. 한 컷의 만평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기사를 찾아 읽고 불편부당함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작가의 시각을 훼손하지 않고 반영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뉴스가 긁어주지 않은 사각지대를 메운 만평이 완성되면, 독자는 그 만평을 보며 염화미소를 띤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건드려주는 쾌감은 꽤 강렬했다.

이승만 시대부터 김영삼 시대까지, 만평은 정권에 위험한 물건이었다. 물론 김영삼 시대에는 조금 나았다. 'YS는 못말려'와 같은 대통령 패러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간혹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끝물이던 노태우 정권 시절엔 주완수 화백의 '보통 고릴라'가 있었다. '보통 사람'을 표방해 전두환의 그림자를 지우려던 군인 출신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풍자를 조금이나마 인정하려고 했다. 그래야 '보통 사람'이 완성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엄혹한 건 사실이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젊은 시사만화가들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더 많은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후에 전국시사만화협회로 개명)가 결성됐다. 한겨레 장봉군 화백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폭발적으로 확산된 '표현의 자유'와 '정치 사회 언론 개혁',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망이 그들을 추동했다. 그리고 '만평의 힘'을 빌려 언론 개혁을 위한 실천에 나섰다.

▲조민성 화백의 '16대 국회 장사' 만평(세계일보 2004년 3월 13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다룬 이 만평을 그린 후 조 화백은 연재 중단 통보를 받았다. ⓒ조민성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가 창립 20주년(2000년 1월 15일 창립)을 맞아 협회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 <인간, 사회 그리고 시대를 그리다>(민중의소리)를 냈다. 건국 이래 최초의 정권 교체에 따른 시민들의 개혁 열망이 뿜어나오던 시절, 혈기 넘치고 스마트했던 젊은 작가들이 20년간 신문 지면에서 때론 정권과, 때론 자본권력과 치열하게 부대끼며 탄생시켰던 옥동자같은 시사만화들이 담겼다.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는 1909년 6월 2일에 창간한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만평’이다. 이도영 화백은 만평으로 사이비 개화를 비판하고 친일 인사를 비꼬았다. 또 첫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꾸짖고, 아동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등 다채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한민보>는 창간된지 1년도 못 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됐다. 이후 시사만화는 설자리를 잃고 10년간 발표되지 못했다."

시사만화는 탄생부터 시대와 불화했다. 그 '유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 사회 그리고 시대를 그리다>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 3부에는 시사만화 발전, 언론개혁, 민주사회와 한반도평화 기여를 목표로 창립된 언론단체 '전국시사만화협회'를 소개한다. 또 협회 회원들이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발가벗기며 여론을 주도했던 시사만화 작품과 개최했던 세미나, 출판, 주요 행사 등을 설명한다. 또 목소리를 내야 할 때나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 직접 몸을 움직여 행동하고 실천한 활동들도 되새긴다.

특히 1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에서는 동아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등의 시사만화 수난사를 정리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지면에 게재되지 못했거나 수정된 시사만화를 모아 소개하는 코너 '시사만화 외전'에서는 손문상 화백의 동아일보 연재 때 일화를 소개했다. "동아일보의 이미지가 이래서 문제다. 왜 루이뷔통이나 베르사체 광고가 안들어오는지 아냐?"며 편집국장이 만평 교체를 요구했다는 내용과 교체 전후 만평을 담고 있다.

▲책 속에서...동아일보 손문상 화백 만평 교체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한 16대 국회를 상여에 실어 '장사' 지낸 세계일보 조민성 화백의 만평(2004년 3월 13일자)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16대 국회 장사 만평'으로 조민성 화백은 연재 중단 통보를 받는다. 탁월한 만평으로 이름을 날렸던 문화일보 이재용 화백은 당시 한나라당의 '색깔론'을 비판하는 만평 등을 그리고 수차례 '만평 누락'사태를 겪다 결국 붓을 내려 놓아야 했다.

책 2, 4부에는 여러 신문, 잡지, 온라인 공간, 출판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원들과 이들의 깊은 통찰이 담긴 작품이 출품됐던 전시회를 소개한다. 시사만화가들은 사회상과 시대상을 대변하는 작품을 신문과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전시회에 발표하며 독자들과 만나 왔다.

에필로그에서는 전국시사만화협회가 외국 시사만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시사만화의 외연을 넓혀온 활동을 담았다. 또 한국 시사만화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젊은 시사만화가 육성과 한국 사회의 진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시사만화의 역할과 정체성 등도 정리했다. 시사만화 질적 성장과 발전을 위한 지원 기관으로 시사만화센터 설립, 세계시사만화가 한반도평화선언 추진, 시사만화 공모전 개최, 이도영상 제정 등의 추진 계획도 소개했다.

최민 회장은 "지난 20년간 전국시사만화협회 시사만화가들이 인간 사회를 그리고, 시대정신을 그리기 위해 무소의 뿔처럼 달려온 기록이자 한국 시사만화의 역사서"라며 "이 기록물을 통해 성찰하고 발전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20년사를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전국시사만화협회는 고민거리도 던졌다. 해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몫이리라.

올해 전국시사만화협회 창립 20년이 됐다. 지난 20년 동안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다. ‘레거시 미디어(정통 언론)’는 독자들로부터 점점 외면당하고 있고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사만화도 올드 콘텐츠가 되어 가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플랫폼 다양화에 발맞춰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힘써 시사만화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인간, 사회 그리고 시대를 그리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7일(금)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올해의 시사만화상 수상도 예정돼 있다.
▲<인간, 사회 그리고 시대를 그리다> ⓒ민중의소리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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