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허문 극장·넷플릭스..'현실적 타협'

홍진수 기자 2020. 11. 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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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롯데시네마도 넷플릭스 영화 상영..신작 개봉 가뭄 속 '차선책'
영화계선 더 많은 관객 안전하게 만나려 넷플릭스 직행 늘어

[경향신문]

사진제공 Pixabay

철옹성같이 서 있던 넷플릭스와 극장 간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메가박스에 이어 한국 최대 극장 체인인 CGV와 롯데시네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에 스크린을 내줬다. 반대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하는 한국영화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극장 관객은 줄어들고 넷플릭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업체의 매출이 커지면서 극장과 제작사 모두 넷플릭스를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넷플릭스 영화

지난 11일 영화 <힐빌리의 노래>가 국내 1위 멀티플렉스 극장 CGV와 2위 롯데시네마의 스크린에 걸렸다. CGV와 롯데시네마 모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상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극장에 걸 신작 영화가 부족해지면서 CGV와 롯데시네마 모두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7년 6월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가 극장 개봉을 추진할 때만 해도 국내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극장 개봉 3~4주 뒤 VOD 서비스’ 등 기존의 ‘홀드백’(한 콘텐츠가 다른 미디어로 이동하는 시간) 원칙을 유지하지 않으면 상영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 때문에 <옥자>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를 제외한 전국의 100여개 개인극장에서만 상영했다. 2018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메가박스가 <더 킹: 헨리 5세>에 문을 연 뒤에도 CGV와 롯데시네마는 넷플릭스와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모든 상황을 바꿨다. 전 세계적으로 배급사들이 신작 개봉을 꺼리는 가운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극장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은 된다.

넷플릭스도 ‘극장 개봉작’이라는 홍보효과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번 <힐빌리의 노래>는 배급사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이 먼저 극장에 제의했다고 한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극장이 넷플릭스 이용자들을 빼앗아갈 가능성 역시 크지 않다. CGV·롯데시네마와 넷플릭스는 <힐빌리의 노래> 상영에서는 약 2주간의 홀드백을 두는 데 합의했다.

<힐빌리의 노래>는 2016년 미국에서 출간돼 큰 화제를 모은 J D 밴스의 동명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뷰티풀 마인드>(2001)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받은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하고 에이미 애덤스와 글렌 클로스가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에서는 오는 24일 공개된다.

지난 18일 개봉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 역시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맹크>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곤 하는 <시민 케인>(1941)의 각본권을 둘러싼 각본가와 감독의 일화를 다뤘다. 넷플릭스에서는 역시 2주 정도 시차를 두고 12월4일 공개된다. 메릴 스트리프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하는 <더 프롬>,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미드나이트 스카이>도 다음달 극장에서 개봉한다.

■극장 거치지 않고 바로 넷플릭스로 가는 한국영화

영화 <사냥의 시간>은 지난 4월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영화 최초로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사냥의 시간>은 영화 <파수꾼>(2011)으로 주목받은 윤성현 감독이 9년 만에 내놓는 작품이었다.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등 한국영화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젊은 남성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사냥의 시간>은 원래 2월26일 극장 개봉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흥행은커녕 손익분기점 달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고심 끝에 제작사는 ‘제작비라도 건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는 “코로나19 위험이 계속되고 세계적인 확산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더 많은 관객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한 끝에 넷플릭스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2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영화 <콜> 역시 <사냥의 시간>과 같은 과정을 밟았다. <콜>은 배우 박신혜와 전종서 등이 주연한 스릴러물로 원래는 올해 봄 관객과 만나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약없이 개봉이 밀렸고, 결국 제작사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에 참여한 영화 <차인표>도 내년 1월1일 넷플릭스로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차인표>는 ‘대스타’ 차인표가 전성기 영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영화로 차인표, 조달환 등이 출연한다.

이제 영화계 관심은 SF 대작 <승리호>에 쏠린다. 방학이나 명절 시즌에 개봉해 수백만 관객을 모을 것으로 기대했던 <승리호>는 최근 넷플릭스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리호>는 제작비만 총 240억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다. 관객 665만명을 동원한 흥행작 <늑대소년>(2012)의 조성희 감독이 연출했고, 송중기와 김태리가 주연을 맡았다. 지난여름 또는 추석에 개봉해 ‘텐트폴 영화’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몇 차례나 개봉을 연기했다. <승리호>가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 중 처음으로 넷플릭스 직행을 확정짓는다면 영화계에 미치는 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코로나19로 낮아진 극장과 넷플릭스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계기로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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