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몰랐던 아빠의 빚, 뒤늦게 알았다면
재산보다 빚이 많다는 것을 모른 채 상속승인을 했다가 뒤늦게 사실관계를 알고 권리행사에 나선 경우, 상속관계를 한정승인으로 바로잡아주는 특별한정승인이란 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미성년자의 경우와 결합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특별한정승인 제도의 구제를 받으려면 재산보다 빚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로부터 3개월 내에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상속인이 미성년자인 경우 '사실을 알게 된 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놓고 문제가 발생한다.
미성년자는 남은 부모 또는 친척 등 대리인 없이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상속 관련해서도 대리인이 법률업무를 대신한다. 따라서 사실을 알게 된 때를 '법률대리인이 사실을 알게 된 때'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고, '상속 당사자인 미성년자가 사실을 알게 된 때'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동안 대법원은 후자가 옳다는 입장이었는데, 19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9일 오후 채무가 A씨가 채권자 B씨의 채권추심에 반발해 제기한 청구이의의 소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로 돌려보냈다.
이날 전원합의체는 민법 제1019조 제3항에서 규정한 특별한정상속제도를 미성년자에게 적용할 경우, '상속채무가 상속채권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은 법률대리인을 기준으로 삼아 '법률대리인이 사실을 알게 된 때'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번 소송은 미성년자였던 채무자 A씨가 성년이 되고 계좌압류를 당하면서 시작됐다. A씨의 부친은 1200만원의 빚을 남기고 1993년 숨졌다. 채무는 유족들에게 넘어왔고, B씨는 유족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 채권을 확인받았다. 이때 소송은 A씨 모친이 대리했다.
A씨는 성년이 될 때까지 이 빚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B씨가 성년이 된 A씨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해 계좌가 압류되자 자신이 채무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A씨는 특별한정승인 절차를 밟을 테니 강제집행을 멈춰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2심은 A씨가 성년이 되고나서야 채무의 존재를 알게 됐으므로 특별한정승인 제도에 따라 한정승인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민법 제1020조 등을 고려하면 기존 판례대로 해석해야 하고, 그렇다면 A씨는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민법 제1020조는 상속인이 미성년자 같은 제한능력자인 경우, 상속포기·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한은 미성년자를 대리하는 법률대리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수의견은 "상속인이 당초 미성년자였다는 이유로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었던 제척기간이 지난 다음 성년에 이르면 다시 새로운 제척기간을 부여받아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법률관계를 조기에 확정하기 위한 제척기간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미 B씨의 채권은 A씨 모친과의 소송을 통해 이미 확정된 것인데, A씨가 성년이 됐다는 이유로 다시 특별한정승인을 받게 해주면 B씨의 권리가 지나치게 침해받아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수의견은 "법정대리인이 착오나 무지로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미성년 상속인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하여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면서도 "현행 민법상 미성년 상속인의 특별한정승인만을 예외적으로 취급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A씨가 처한 상황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는 뜻이다.
반면 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A씨의 특별한정승인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다수의견에 따르면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러 채무초과 사실을 알고 특별한정승인을 하려고 해도 이미 제척기간이 지나 상속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며 다수의견의 결론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 등과 달리 미성년자를 보호할 다른 제도도 없다"며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은 상속인의 자기결정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정승인 제도의 입법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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