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면서" 성차별에 호소조차 못하는 그들.. 극단적 선택 4개월 연속 증가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0. 11. 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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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극단적 선택한 日 남성 1302명 / 남녀 합치면 총 2153명
 
11월19일은 ‘세계 남성의 날’이다. 전 세계에서 기념되는 ‘여성의 날’과 달리 남성의 날은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기념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날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남성의 날은 지난 1990년대 등장했다. 이날은 유엔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영국, 미국 등 세계 약 60개국에서 이날을 기념한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날은 △남성과 남자 어린이의 건강을 살피고 △여성과의 관계개선과 성 평등을 추구하며 △긍정적인 남성 모습을 주목하는 날이라고 한다.

반면 일본에는 이러한 인식조차 없어서인지 건강을 되돌아보기는커녕 목숨을 끊는 사례가 무려 4개월간이나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남성에게만 요구되는 무게에 억눌린 안타까운 결과”라고 유감을 드러냈다.

◆극단적 선택 4개월 연속 증가

최근 일본 경찰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10월 일본에서 총 2153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무려 40%나 증가한 수치로 일본의 자살률은 지난 7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다.

성별로는 남성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 늘어난 1302명이며 여성은 82.6% 늘어난 851명이다.

여성의 극단적인 선택이 큰 폭으로 증가해 우려가 나오는 한면 남성의 높은 자살률 추세가 이어지면서 일본 사회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지난해 OECD 평균 11.3명, 한국은 2배 넘는 24.6명) 1위를 무려 15년간이나 지킨 한국을 일본이 앞지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남자면서~” 성차별에도 호소조차 못 하는 그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다. 유독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다양한 원인 중에는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감과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또 19일 동양경제에 따르면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어느 순간 나타난 ‘코로나 블루’ 영향이 더해져 남성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남성 특유의 의식(인식)’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자살 대책에 관한 의식 조사’를 보면 남성(전 연령대)의 경우 ‘고민 또는 스트레스를 느낄 때 누군가에게 상담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망설임’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다나카 유키 다이쇼대 심리사회학 교수는 “남자면서~”, “남자니까” 등의 성차별을 문제로 지목했다.

“남자면서~” 등의 말은 성차별적인 말이지만 일상에서 흔히 사용될 정도로 익숙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가정과 사회가 남성에 기대하는 건 ‘남자다움’이라며 이와 반대되는 ‘약점’은 어릴 때부터 금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점을 연상시키는 감정을 표출하지 말라고 배운 소년들이 어른이 돼 주변에 약점을 보일 수 없게 된 것”이라며 “남성도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쉽게 마음을 터놓고 말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남성도 다양한 일로 고민하고 힘들지만 주변이나 본인 스스로 억압에 묶여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같은 현상은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후생노동성의 자살예방상담 정보를 정리한 사이트 이용률에서도 드러나는데 여성의 이용률이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남성의 경우 ‘고민이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주고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여성(89.1%)보다 적은(76.4%)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같은 “문제가 쌓이고 반복되면 심할 경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자가 약해서는 안 된다. 고통은 극복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수치다. 남성 스스로 이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정신과 전문가조차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이 감춰진 고통이야말로 남자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이라고 확신한다”

임상 심리사 테렌스 리얼이 저서에서 한 말이다.

다나카 교수는 “고민에 쌓인 사람이 용기 내 상담하려고 해도 상대 반응이 이렇다면 말도 꺼내기 전 주눅 드는 건 당연하다”며 “(남성들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있다. 그럴 때 ‘남자니까’라는 인식을 바꾸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한편 최근 개그맨 박지선씨의 안타까운 선택을 두고 홍현주 한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선씨도 겉으로는 밝은 말만 했지만 속으로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힘들면 힘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오히려 털어놓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언급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게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용기 있어야 하는 남성에게 마음을 터놓고 말할 용기도 필요해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아사히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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