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개소리꾼'의 '개소리'에 솔깃하셨습니까
제임스 볼 지음, 다산초당 펴냄
진실 거짓 상관없는 허구 담론 '개소리'
거짓말보다 더 유혹적, 더 빠르게 퍼져
가짜 미디어에 막장 정치인 가세하고
수익 악화 된 레거시 미디어도 편승해
유명인이 격정이나 분노, 눈물 등을 앞세워 여론에 호소하거나 여론을 선동한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세태는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한마디로 ‘개소리(bullshit)’가 난무하는 시대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이 여론의 눈과 귀를 흐린다. 개소리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퍼뜨리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개소리에 솔깃해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퓰리처상 수상 경력이 있는 젊은 저널리스트 제임스 볼이 저서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통해 개소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 소비 과정을 정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개소리는 애초 음지에 있었다. 비주류 세력이나 영향력이 떨어지는 가짜뉴스 사이트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개소리의 생산과 가공, 확산을 가속화 했다.
인터넷 세상에선 생산자가 신분을 숨기거나 세탁하기가 쉬웠다. 책은 대표적인 인물로 영국의 극우 정치해설가 마일로 이아노풀로스를 지목한다. 그는 나이를 속이고, 이름도 바꿨다. 뚜렷한 가치관에 기반하지 않고 자극적 이슈를 따라가며 그저 이슈의 중심에 서려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의 고속 성장은 개소리의 확산을 이끌었다. 전문가보다 친한 친구를 더 신뢰하는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친구들의 포스트를 열심히 퍼 날랐다. 소셜미디어가 맞춤형 정보 제공이라는 미명 하에 이용자에게 편향 된 정보만 노출하는 필터 버블 현상도 문제였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 속에서 인쇄 광고 등의 수익이 악화한 기성 언론은 ‘클릭 장사’에 현혹됐다. 따라잡아야 할 정보는 늘어났지만 이에 대응할 충분한 인력을 둘 예산 형편이 되지 않자 꼼꼼한 검증은 약해지고 다른 언론이 폭로한 내용에 분노를 조금 더 담아 기사를 재가공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개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 유통, 소비되고 있다. 표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개소리를 생산하고,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미디어들은 퍼 나른다. 사람들은 개소리에 더 솔깃해한다. 음모론에 쉽게 넘어가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를 감정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소리 시대가 열린 건 모두의 책임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시에 저자는 누구나 현 상황에 책임이 있기에 누구나 개소리 생태계를 교정하는 데 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정치인에게는 개소리에 공격당할 경우 ‘설명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응하면 할수록 늪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또 정치인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미디어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유권자와 뉴스 소비자들에는 “단 몇 초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어떤 자료를 공유하기 전에 스스로 최소한의 검증을 해보라는 의미다. 속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통계 상식도 가져야 한다. 정치 성향이 다른 매체가 만든 방송이나 기사를 보는 것도 유용하다.
영국 저널리스트가 쓴 책인 만큼 한국 사례는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나라 사례들이 하나하나 익숙하다. 개소리 세계화의 시대, 저자가 제안한 해법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만하다. 1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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