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지도력이 확립되려면..

박태주 2020. 11. 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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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일이다.

이탈리아의 세 노총이 인플레이션 극복을 앞세워 임금인상 억제안을 수용하자 강경파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자신이 제안하고도 막상 협약 체결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사회적 대화의 좌초를 두고 네 탓, 내 탓 하지만 민주노총이 책임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도력의 실종과 전략 부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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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1993년의 일이다. 이탈리아의 세 노총이 인플레이션 극복을 앞세워 임금인상 억제안을 수용하자 강경파들이 들고일어났다.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될 것은 뻔했다. 집행부는 노동자 총투표안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런 뒤 현장 설명에 나섰다. 무려 3만 번. 결과는 찬성 68%였다.

똑같은 일이 1987년, 아일랜드에서도 벌어졌다. 이번에는 노총의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산별노조 차원에서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는 3년마다 한 번씩, 총 8차례의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투표가 조합원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라면 현장 설명회는 지도부가 조합원과 소통하고 조합원 사이 토론을 유도하는 숙의의 과정이었다.

일찍이 유럽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려면 중앙집중적·위계적인 노동조합의 조직구조가 필수라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었다. 노동조합 중앙이 강력해야 양보안을 내고 합의를 이루며 그 합의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춰보면 이탈리아나 아일랜드는 물론 한국도 “사회적 대화가 거의 이뤄질 수 없는 나라”에 속한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에서 사회협약이 타결되며 이 신화는 흔들린다.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주체, 특히 노동조합의 전략적인 선택이 사회적 대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중앙집중적 조직체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코로나19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사회적 대화가 가동됐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자신이 제안하고도 막상 협약 체결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합의안이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된 탓이다. 지도부는 물러났다. 사회적 대화의 좌초를 두고 네 탓, 내 탓 하지만 민주노총이 책임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도력의 실종과 전략 부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서라도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자신의 양보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 단체의 양보를 요구하면서 협의의 주도권을 쥐기는커녕 정부의 온정주의에 기대며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지도력의 실종은 합의안이 나온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중앙집행위원회가 물리적으로 마비되는가 하면 분위기가 부결 쪽으로 기울자 위원장은 대의원 대회를 소집했다. 대의원들은 추인을 거부했다.

지도력 실종이 낳은 사회협약의 좌초

민주노총에서 중앙의 지도력은 기업별 체제로 인해 분산되고, 조합원의 의사는 정파 구조에 따라 왜곡된다. 민주노총에서 지도력을 확립하려면 조합원 참여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아래로부터 지지를 받아 중앙의 지도력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조합을 조합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야말로 노조 민주주의의 요체다.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던 중 일각에서 임금동결론을 제기한 바 있다. 만일 지도부가 임금동결론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주도한 뒤 그 결과를 조합원에게 물었다면 어땠을까. 부결되더라도 내부의 숙의 과정은 남았을 테고, 노조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민주노총에서 집행부를 뽑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선거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반대하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투쟁은 내남없이 알듯 대안이 아니다). 찬성하면 최소한 지도력을 세우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논쟁이 생산적으로 흐르면서 선거 이후의 대응이 가능해진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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