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알고리즘의 '기준' 누가 정할까?

하헌기 2020. 11. 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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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가 대세다. 지금까지 방치되어온 허위 정보나 혐오 발언의 허용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플랫폼 알고리즘의 기준은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EPA10월28일 열린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IT기업 CEO들은 공화당 의원들의 호된 공격을 받았다.

지난 4월 총선은 ‘온라인 선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선거유세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같은 특수 사정으로 비대면 선거가 강제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요즘 선거에서 온라인 캠페인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공간, 많은 정보를 취하는 공간이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 바로 직전에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가 하나 열렸다. 주제는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였다. 여기서 미국 대표 IT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의 최고경영자들이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통신품위법 230조에 따르면,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 덕분에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사 플랫폼에 올라온 허위·비방 콘텐츠에 대해 면책을 받는다. 온라인에서 퍼지는 가짜뉴스와 비방 콘텐츠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상황을 생각하면 명백히 나쁜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이 플랫폼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촉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업자들이 소송당할 걱정 없이 자유롭게 각종 게시물(심지어 허위·비방까지 포함한)을 유통시키면서 이용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을 폐지하면 플랫폼 사업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소송을 당할 판이다. 플랫폼 이용자들의 자유도를 대폭 제한하는 쪽으로 운영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다. 결국 플랫폼들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에서는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가 대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청문회를 자신의 트위터에서 중계하며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라고 썼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역시 지난 1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할 때 ‘통신품위법 230조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수처럼 싸우는 두 세력이 이 법에 관해선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가 다르다.

민주당은 SNS 플랫폼들이 허위 정보를 지나치게 방치하기 때문에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은 SNS 플랫폼들이 보수 성향 의견만 편향적으로 탄압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청문회에 출석한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들에게 ‘바이든에게 불리한 기사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그런데 영국 BBC 기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BBC는 “페이스북 인기 게시물을 모아 보여주는 ‘크라우드 탱글(사용자들의 활동을 기반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매 순간 떠오르는 이슈들을 알려주는 SNS 모니터링 플랫폼)’에선 우파 논객과 〈폭스뉴스〉 등 보수 성향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보수 논객이 나오는 콘텐츠가 1위부터 10위까지 독차지할 때도 있다”라고 보도했다. 즉 공화당 의원들은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의 가짜뉴스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했다기보다 자신들이 믿는 허위 정보를 토대로 청문회를 진행한 셈이다. 이런 촌극은 지난해 한국 국감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유튜브에서 보수 유튜버들에게만 노란 딱지를 붙여 수익 창출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다. 이처럼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기우는 경우가 많다. 가짜뉴스나 비방 콘텐츠 등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보다 선거에서의 유불리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소셜 플랫폼과 선거의 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면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역시 미국 대선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 이용자 800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다. 이 정보들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라는 정치 컨설팅 업체를 통해 트럼프 측에 전달됐다. 당시 트럼프 캠프는 이 정보를 토대로 이용자들의 성향과 관심사 등을 분류하고 그들에게 맞춤형 메시지를 내보냈다. ‘Defeat crooked Hillary(부정한 힐러리를 물리치자)’ 같은 문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상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정보가 선거공작과 여론조작에 활용된 셈인데, 이 사실이 밝혀진 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측이 주장한 말이 섬뜩하다.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온라인 광고 표준으로서 널리 인정받아온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자신들의 데이터 사용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Reuter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 수집·유출에 연루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CEO 알렉산더 닉스.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부터 제재할까

사실 플랫폼 이용자들의 성향을 분석해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체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측의 주장처럼, 낯선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일을 하는 주체는 여론조작을 꾀하는 범죄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누군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가짜뉴스라도 그것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공해준다. 알고리즘은 이런 방식으로 시민들의 편향성을 강화하고 상식을 왜곡하며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알고리즘과 무엇이 다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사회문제 해결이나 사실관계와 무관한 담론들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퍼뜨리는 경우가 잦지 않은가.

미국 대선 후보들이 공히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를 주장했다는 것은 결국 어느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와 무관하게 앞으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국 역시 그 논의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건, 지금까지 사실상 방치되어온 허위 정보나 혐오 발언 등에 대해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부터 제재할지’ 기준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홈쇼핑 등에 접속하면 사용자의 평소 취향을 반영한 상품들이 끊임없이 추천된다. 알고리즘이 하는 일이다. 소비자 처지에서 알고리즘은 사이버 세계의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기계적 작동’만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 역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사용자들이 원할 만한 게시물과 상품을 나름의 분석을 거쳐 제공하는 상업적 목적에 치중하고 있지만 말이다.

만약 플랫폼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면 결국 ‘알고리즘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화두로 등장할 것이다. 그 기준의 설정은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시민들이 어떤 합의를 거쳐 바람직한 정치적 결정을 이끌어낼 것인가로 모인다.

우리가 보는 PC와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알고리즘이 골라준 영상들이 펼쳐져 있다. 그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알고리즘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알고리즘 자체는 사회적 합의와 상식을 추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정치적 알고리즘’에 따라 지지자들에게 듣기 좋은 얘기만 배달하는지 실제 공동체의 이익에 관한 비전을 보이는지, 유권자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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