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좋은 질문의 힘

조춘애 광명고 교사 2020. 1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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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삶이 ‘나’라는 한 존재 안에 세상의 수많은 주제와 신비를 숨겨놓은 것이라면, 훌륭한 가르침이란 삶과 세상에 대한 좋은 질문으로 학생들이 그 질문을 품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로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은 학생들에게 줄 좋은 질문을 마련하는 일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나중에 운좋게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하면 내 삶이 조금이라도 더 기쁘고 의미가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얼마 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준 뒤, 나만의 공간에 어울리는 이름을 한자를 넣어서 이미지로 표현하고 그 공간을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는 활동을 했다. 외부로 향해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기 위해 활동을 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길’이라는 시를 같이 읽으면서, 시에서 다가온 구절과 그 이유도 써보도록 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학생들은 넓고 잔잔한 호숫가에 서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공손해진다.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평소에는 잘 듣지 못했던 좀 더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활동지에는 숲과 나무, 농기구와 의자에서부터 공구와 기계장치, 은하수가 펼쳐진 광활한 밤하늘에 이르기까지 삶의 수많은 의미와 주제들이 다채로운 빛깔로 펼쳐져 있다. 그러나 교실 한쪽에는 교사의 어떤 질문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 학생들이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어떤 장벽들이 그의 배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 장벽들을 하나하나 이해하면서 그것들과 친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전체 설명을 마치고 엎드려 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다시 찬찬히 설명해주고, 그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에게 없는 것들을 다 챙겨준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학생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장벽이 치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수업이 끝날 무렵 그 학생이 들고나온 활동지를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활동지에는 사방이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막힌 공간 안에 어떤 사람이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기가 어디야? 소년원요. 이 사람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음악을 듣고 있어요. 네가 하고 싶은 뭘 표현한 거야?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왜 그 일이 하고 싶은 거야? 불쌍하잖아요.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의 대답이 나의 마음에 여러 개의 파문을 일으키며 출렁이고 있어서 감히 그에게 어떤 질문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이와 관련한 어떤 경험이나 계기가 있었는지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이 어린 나이에 실패하고 넘어진 십대들의 삶의 소중함과 연민을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내면에 갇혀 있는 고립된 목소리들이 들려지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내면의 꿈이 다른 사람, 세상과 소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경쟁으로 서로를 단절시키는 교육제도는 우리가 이러한 의미를 얼마큼 더 공유해야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일까?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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