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달리, 저는 고개를 숙이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압니다
[경향신문]
“투표 사기는 우리의 방식이 아니다”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을 기약하겠다”.
뉴질랜드에서 해마다 열리는 ‘올해의 새’ 콘테스트에서 ‘투표 사기’가 발견됐다. 다행히 주최 측이 조치를 취했고 결과가 무사히 발표됐으며 패배한 쪽에서도 결과에 승복하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 스터프 등이 18일 보도했다.
환경단체 포레스트&버드 재단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몇 달에 걸친 e메일 투표를 집계해 매년 10월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올해엔 뉴질랜드 총선이 겹쳐 한 달 미뤄졌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콘테스트 초반에는 알바트로스의 한 종류인 토로아가 우세했다. 그러다가 멸종위기종인 카카포 앵무새(사진)가 대세를 이뤄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막바지에 키위 푸쿠푸쿠(작은점박이키위)가 갑자기 치고 올라왔다. 재단 측이 조사해보니 오클랜드에 IP(인터넷 주소)를 둔 하나의 e메일 계정으로 키위에 1500표의 몰표가 쏟아졌던 것이다.
결과는 카카포의 승리였다. 지난 16일 발표된 최종 결과에서 진흙탕 싸움을 뚫고 카카포가 우승하자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키위 캠프도 깔끔하게 인정했다. 키위 측은 “투표 사기는 키위의 방식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공정성과 평등과 정직함이 이 새의 가치”라고 밝혔다. 키위는 뉴질랜드의 상징새이기도 하다. 토로아 캠프는 트위터에 “결과에 승복하고 내년 대회를 준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번 투표에 “러시아가 개입한 증거는 없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 콘테스트는 멸종위기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2005년부터 열리고 있다. e메일 투표이고 검증이 까다롭지 않다 보니 최근 불법 몰표가 등장했다. 라디오뉴질랜드에 따르면 2018년에는 흰얼굴왜가리를 지지하는 사람이 3000번이나 투표해 판을 흐렸다. 지난해에는 뉴질랜드가 아닌 해외 투표가 많아지면서 “러시아가 이 투표에도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쏟아져, 재단이 계속 해명을 해야 했다. 올해에는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로 행사 소식이 퍼지면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5만5000표가 쏟아져 들어왔고 그 가운데 투표 사기 논란까지 일어났다.
1위를 차지한 카카포는 날지 못하는 새로, 세계의 앵무새들 가운데 가장 크다. 야행성이며 뚱보앵무새, 올빼미앵무라고도 불린다. 몸길이가 약 60㎝에 몸무게가 4㎏까지 나간다. 원래는 뉴질랜드 전역에 흔했으나 서식지가 파괴되고 인간이 가져온 곰팡이에 감염되면서 멸종위기를 맞았다. 세계에서 오로지 뉴질랜드에만 살고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카카포는 210마리에 불과하다. 뉴질랜드 자연보호부는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카카포는 2008년 처음으로 ‘올해의 새’에 등극했고 이후에도 몇 차례 왕좌를 차지했다. 지난해 1등은 발효된 과일을 좋아해서 ‘술취한 새’라고 불리는 호이호(노란눈펭귄)였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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