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의 긍정 에너지로 코로나 시대를 위로하다

오수현 2020. 11. 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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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남자' 첼리스트 양성원
서울시향과 내달 생상스 연주
"단조 특유의 어두움 털어낸
힘든 모두에게 필요한 음악"
'파리의 남자'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음대 교수)이 프랑스 대표 작곡가 생상스의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양성원은 지난달 연주를 위해 파리를 찾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예정됐던 두 차례 연주회 중 하나가 취소됐다. 귀국 후 2주간의 자가격리를 무릅쓰고 찾았던 파리이기에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다음달 5~6일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윌슨 응)과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 연주를 앞둔 양성원에게 이번 방문은 오랜만에 파리의 예술적 공기를 접하며 음악적 영감을 충전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파리는 양성원에게 제2의 고향이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한 부친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은 음악가로는 드물게 1980년 개관한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 이후에도 프랑스에 남아 뤼에유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 8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양성원은 이런 아버지 덕분에 프랑스의 예술적 분위기와 문화적 토양 가운데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진학해 첼리스트로 성장했다. 프랑스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마친 직후인 지난 16일 서울 효자동 개인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은 아주 프랑스적인 작품이에요. 매우 우아하면서도, 첼로와 오케스트라 간 주고받는 대화 사이에 위트가 넘치죠. 그리고 천재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생상스의 곡답게 기교적으로 화려해요. 단조(minor) 곡 특유의 어두운 내면이 엿보이지만, 실상은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죠."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은 드보르자크, 슈만, 엘가의 첼로 협주곡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풍부한 화성적 색채와 세련된 감성이 곡 전반을 지배하는 매혹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이 곡은 당시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이 곡은 여느 협주곡처럼 총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악장 간 끊김없이 곡이 연속해서 이어집니다. 주로 협주곡에 2악장으로 등장하는 느린 악장이 없는 것도 특징이죠. 1악장에서의 주제가 3악장에서도 다시 등장하면서 곡 전체가 굉장히 순환적인 양상을 띠죠."

양성원은 프랑스에 예술적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동안 커리어를 돌아보면 의도치 않게 프랑스 작품을 멀리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첫 음반을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로 시작했고, 이후 '브람스와 슈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앨범과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로 화제를 모았다. 또 다른 첼리스트들은 주목하지 않았던 쇼팽과 리스트의 첼로 곡을 발굴해 연주하는 학구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 시점 왜 프랑스 음악을 들고 돌아왔을까.

"독일 음악이 문학적이라면, 프랑스 음악은 회화적이에요. 베토벤, 브람스, 슈만과 같은 19세기 독일 작품에는 고통을 이겨내는 철학적 정서가 담겨 있어요. 하지만 프랑스 작품들은 아무리 단조를 써서 어두운 감성을 보여주려고 해도 뭔가 우아하고 긍정적이에요. 생상스의 협주곡도 처음엔 왠지 불길한 분위기이지만, 어느새 듣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위로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짓게 하는 마법과 같은 힘을 갖고 있는 곡이죠. 올해 우리에겐 생상스의 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어려웠던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우아하면서도 긍정적인 이 곡을 연주하게 되어 기쁩니다."

올해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와 녹음 등 계획됐던 양성원의 프로젝트도 줄줄이 취소됐다. 하지만 당초 당혹감은 점점 감사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내가 아쉬워할 프로젝트가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특히 올해 무관중 콘서트를 몇 차례 하다보니 무엇보다 관객과 함께 호흡했던 실황연주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됐어요. 같은 공간 안에 1000명, 2000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공유하는 그 순간이 음악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예전엔 연주 때 관객 중에 기침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면 살짝 신경이 쓰이곤 했는데 이젠 그 소리도 그리워요(웃음)."

[오수현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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