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변곡점서 찾은 제주..그림 그리고, 영화 찍다

전지현 2020. 11. 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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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표 작가 개인전
거친 잡초 넝쿨·바람 그리고
수십조각으로 구성된 풍경화
작업과정 영화로 제작해 눈길
제주 풍경화를 그린 김남표 작가와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 `팬텀`을 찍은 민병훈 감독,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아이프 대표(왼쪽부터). [전지현 기자]
김남표 작가(50)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제주의 거친 수풀과 바람이 야성적인 풍경화를 펼쳐냈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제주도 검질(잡초 넝쿨의 제주 방언)에서 그림 인생의 변곡점을 발견했다.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 척박한 현무암을 뒤덮은 검질은 그의 손끝 감각에 와닿았다. 붓 대신 손가락과 면봉으로 그리는 작가는 "나무에 여러층이 섞여 있는 덩쿨은 오랫동안 추구한 질감이었다. 50세가 되니 그림에 복잡한 감정을 담게 되고 검질이 좋은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김남표 Instant Landscape-Gumgil, A Portion in a whole#2.
Instant Landscape - Sensitive Construction#12
그가 2018년부터 30개월간 제주를 오가며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 '김남표의 제주 이야기-검질'을 열었다. 서울 청담동 아이프(4층)와 호리아트스페이스(3층)에 제주 검질 풍경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천착한 호랑이와 표범, 얼룩말 그림 30여점을 펼쳤다. 치밀한 손 끝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풀잎과 동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상상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직접 보고 느낀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온몸을 모기에 물어뜯기며 이름 모를 수풀 속을 뒤지고, 특수 제작한 이젤을 들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여명과 낙조의 감동을 화면에 꾹꾹 눌러담았다.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 감정이 더 뜨겁게 드러난다.

지난 16일 전시작들을 둘러본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생대회 이후 한 번도 밖에서 그린 적이 없다. 막상 나가보니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막막하더라. 그래도 제주에 먼저 정착한 민병훈(51)감독과 대화를 하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10여년 인연을 이어온 예술동지인 민 감독은 그가 제주에서 작업하는 과정을 담아 영화 '팬텀'를 찍었고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김 작가가 아내와 사별한 화가로 등장해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섞인다.

Instant Landscape-Gumgil flower#2
Instant Landscape-Gumgil#7
이날 동석한 민 감독은 "서울독립영화제(11월 26일~12월 4일) 개막작인 영화 '기적'에도 남표가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로 출연했는데 연기를 엄청 잘 한다. '한국의 데이비드 호크니(영국 거장 화가)'라고 생각하는 남표 그림은 영화적이서 좋다. 화면 너머에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다. 호랑이, 표범 같기도 하면서 유연한 화가다"고 오랜 지기를 추켜세웠다. 그는 중국 화가 펑정지에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등장시킨 예술 영화를 제작해왔다.
Instant Landscape-Gumgil, 106x445cm(25x25cm 68점), 합판에 유채, 2020
전시전경..-3층 호리아트스페이스
영화 작업에서 깊은 영감을 받는 김 작가는 새로운 작품 형식도 만들었다. 가로 세로 25㎝ 크기 작은 그림을 수십개 그려 퍼즐처럼 대형 화면을 이루는 '셀(cell) 시리즈' 3점을 발표했다. 53조각으로 이뤄진 '검질 풍경'(세로 185×가로 270cm), 68조각으로 구성된 '야외 풍경'(106×445cm), 84조각으로 완성된 '올빼미'(185×320cm)가 전시장을 꽉 채우며 장관을 이룬다. 전체 그림과 상관 없는 조각 그림이 몇 개씩 배치된게 특징이다.

김 작가는 "어떤 형식 작품으로 사물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음습한 검질을 조각 그림으로 표현했다. 조각을 재배치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김남표 작가
김남표., Instant Landscape-Gumgil, A Portion in a whole#1, 106x445cm(25x25cm 68점), 합판에 유채, 2020
이번에 조각 그림도 판다. 53조각으로 이뤄진 '검질 풍경'만 1인당 최대 4조각으로 제한해 총 40조각을 판매한다. 10~40명의 공동 소장자 그룹이 생기고, 나머지 13조각은 작가와 기획자가 보관한다. 작가는 작품을 공유하는 다른 개념의 소유 방식을 원했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아이프 대표는 "소장자와 작가의 만남, 소장자들 끼리 그림 교환, 작가의 드로잉 수업 등으로 김남표 '팬클럽'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12월 18일까지.

전시전경.-4층 아이프라운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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