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방치한 천만 노동자에게 '전태일 3법'이 절실한 이유

김완 2020. 11. 18.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그후 50년][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
3부 2020 전태일, 무엇이 필요한가
①노동 안의 대안 '전태일 3법'
지난 8월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태일 3법 입법발의 대표자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최현수(가명·39)는 서울 가산동의 한 컴퓨터그래픽 회사에서 일한다. 직원 4명의 작은 사업장이다. 수시로 야근을 하고, 일이 몰리면 주말에도 출근한다. 일한 시간에 따라 정확히 계산된 수당은 받지 못한다. 사장이 가끔 수고했다며 용돈 주듯 봉투를 내밀 뿐이다. 회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며 내년 개별 연봉 인상은 없다고 통보했다. 코로나19가 없었던 지난해와 그 전해에도 연봉은 제자리였다.

지난 6일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함께 저녁을 때우던 동료가 슬쩍 이런 말을 던졌다. “회사가 1명만 더 고용하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노조가 있으면 회사와 협상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뭐 그냥 사장 맘대로 다 해버리니….” 최현수는 막차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동료의 말을 곱씹었다. ‘4명이 아니라 5명이면 노조를 할 수 있고, 노조가 있으면 정식으로 수당도 받고 연봉 협상도 할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최현수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전태일 3법① 5인 미만 사업장도 근로기준법 적용

최현수의 동료가 했던 말과 달리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노조를 결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에 그쳤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통계조차 없다. 게다가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11조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예외’ 조항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시행령으로 일부만 적용하게 되어 있는데, 해고 사유 제한, 해고 시 서면통지, 부당해고 및 부당해고 구제 신청, 휴업수당, 최장근로시간(주 52시간), 연장·야간·휴일수당, 연차휴가, 직장 내 괴롭힘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최현수 회사의 사장이 야근과 휴일근무 수당을 주지 않아도 법 위반은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통계연보’를 보면,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 수는 217만2957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28.7%에 이른다. 이 수치가 고용보험 적용 노동자를 집계한 것을 고려하면 근로기준법 바깥의 노동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예외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정책팀장인 남현영 노무사는 “이 예외 조항을 폐지하기 위해 수많은 입법 노력이 있었고, 헌법소원까지 했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이었다”고 말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현행 근로기준법은 대공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만 노동자성을 인정해주고 그렇지 않은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개별화해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만들어놨다”며 “선택적 기준으로 노동자를 정하는 시스템을 우선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유림 서울노동권익센터 활동가가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7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전태일평전을 낭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태일 3법② 특수고용·간접고용·프리랜서도 노조법상 노동자로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최현수는 내일 아침에 먹을 목초우유, 통밀식빵, 가염버터를 ‘샛별배송’으로 주문했다. 7일 새벽 6시, 최현수의 집 현관엔 몇시간 전에 주문한 식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글쎄, 뭐랄까요. 음식도 좋지만 나보다 더 빨리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묘한 위로가 되기도 해요. 우울할 때 시끌벅적한 시장을 걸으면 활력이 생기는 기분처럼요.”

권혁(가명·24)은 최현수에게 아침거리를 배달한 누군가처럼 사람들이 ‘신선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동하는 ‘마켓컬리’ 포장 노동자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단기 알바 모집 공고를 보고 문자메시지로 구직 신청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면접도 없이 채용 확정 알림이 카카오톡으로 왔다. 그 뒤부터 마켓컬리의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정작 그와 고용 계약을 한 곳은 마켓컬리가 아니라 “애플 어쩌고저쩌고 하는 업체”였다. 그나마 계약서조차 딱 7일만 열람할 수 있어, 지금은 확인할 수도 없다. 권혁과 함께 일하고 있는 수백명의 마켓컬리 물류센터 노동자들 가운데 마켓컬리 소속 노동자는 한명도 없다.

권혁은 오후 3시30분까지 출근한다. 임금이 계산되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다. 그사이 30분은 대기 시간이라고 했다. 작업 관리자는 1시간 걸릴 일을 10분 안에 끝내도록 하자는 황당한 요구를 하지만 볼멘소리조차 낼 수 없다. 권혁이 하는 포장 일은 철저한 분업이다. 브이(V)자 모양의 레일 위로 누군가 물건을 가져다주면 권혁은 플라스틱 상자를 쏟아 종이 상자로 싸는 일만 거듭 반복한다. 너무 많은 물건이 쏟아지기 때문에 작업 관리자는 자주 “레일 위를 올라타라”거나 “레일 밑으로 기어 들어가라”는 지시를 했다. 그렇게 하루에 대략 상자 500여개를 포장하고 트럭에 밀어 넣었다. 권혁과 함께 브이자 레일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한두명은 떨어진 물건에 발을 찧거나 운반 중에 레일 모서리 등에 긁힌 상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안전모와 안전화조차 없이 일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는 그래도 안전모와 안전화는 줬어요. 마켓컬리는 그것조차 없네요.”

이들의 휴식 시간은 6시간 꼬박 일한 뒤에 주어지는 중간 휴식 10분뿐이다. 권혁은 처음 출근하던 날 풍경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는 노동자들이 복도나 계단에서 그냥 오줌을 싸고 있었지만 누구도 말리지 못했어요.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 걸 서로 알기 때문에요.”

권혁과 같은 이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바꾸자고 목소리를 낼 통로는 없다. 권혁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을 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 노동자), 디지털 개수 노동을 하는 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가 없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에서 ‘근로자’의 정의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2018년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했지만, 대리운전기사와 방과후학교 강사 노조 등 특수고용직 노조는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지 1년이 넘어서야 겨우 ‘합법노조’로 인정받는 등 진통을 겪었다. 간접고용 노동자 역시 원청의 지시 감독을 받지만 원청과 교섭할 권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과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46만여명의 간접고용 노동자, 220만여명의 특수고용 노동자, 숫자도 파악하기 힘든 프리랜서 노동자 등을 포괄하기 위해서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 등과 같이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차별금지, 단체교섭 등과 같은 보편적 노동권에 편입시켜야 한다”며 “노동조합법 개정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전태일 3법 국회 대토론회’. 국회 공동취재사진단

전태일 3법③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만들어 일하다 죽지 않게

이 두가지 개정안과 함께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묶어서 노동계는 ‘전태일 3법’이라고 부른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이 세 법만은 반드시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가 활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줄줄이 산업재해로 사망해도 책임자가 처벌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사업주가 처벌받더라도 몇백만원 벌금에 그치는 일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한 법안이다. 재해 처벌의 범위를 ‘시민, 특수고용, 하청 노동자’로 넓히고, 처벌 대상은 ‘기업’ ‘경영 책임자’ ‘원청’ ‘발주처’ ‘책임 공무원’ 등으로 확대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에게 엄한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해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지난 10일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가 만나 입법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방점을 찍고 있으나, 지난 11일 우원식·박주민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하며 당내 의견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완 김양진 김민제 기자 funnybo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