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채민 "부담감 컸다"..'본격 병수볼' 강원이 흔들렸던 이유

유현태 기자 입력 2020. 11.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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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민. 강원FC

[풋볼리스트] 유현태 기자= 강원FC의 주장 임채민은 2020시즌 내내 부담감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그 역시 실력 부족이라고 걸 인정하지만 다음 시즌엔 다를 것이라고 예고했다.


강원은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36골을 넣어 득점은 5위, 41골을 내줘 실점은 10위. 특별하지 않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시작 전 대어급 국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받았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2020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도민구단으로서 2년 연속 안정적으로 잔류하며 기반을 다진 시즌일까, 아니면 한 계단 내려선 것처럼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까. 영입생이자 시즌 중반 주장의 중책까지 맡았던 임채민은 이 물음에 대답할 적임자처럼 보였다.


임채민은 지난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풋볼리스트'와 만나자마자 "사실 인터뷰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변명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팀의 성적은 물론 자신의 경기력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돈을 주고도 못할 경험"이었다며 강원의 2020시즌을 마냥 실패로 보는 시선은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다.


◆ "1인분도 못 한 것 같다" 부담감에 흔들린 한 시즌


임채민은 영남대에서 김병수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고등학교 때는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임채민에게 "꿈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김 감독이었다. 임채민은 영남대 시절 축구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됐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은사와 재회한 강원에서 잘하겠다는 의지가 유난히 컸다. 이 특별한 마음이 오히려 임채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제가 정말 유명하고, 잘하는 선수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기존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코칭스태프들의 기대감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자꾸 헤매는 것 같아서 자책감이 들더라고요. 1인분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당연히 (강원에 합류한 뒤 성적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점들이 많았어요. 더 강해지기 위해 나를 영입했는데 못 하고 있으니까,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엄청 좋은 팀에 갔다면 내 것만 하면 될텐데. 감독님도 (영입 선수들의) 부담감을 보셨던 것 같아요. 부담 갖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해주시는데도 제 자신이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극복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담감을 지우는 연습을 1년 동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즌 초반 불거졌던 '불화설'은 임채민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임채민 스스로 대학 은사인 김 감독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만큼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어려웠다.


"저희가 성적이 좋았으면 (불화설을) 웃으면서 넘겼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눈치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사실 영남대라고 하면 2군에 (이)병욱이나 어린 선수들이 좀 있지만 저나 (김)승대밖에 없는데. 다른 학교, 고려대나 연세대 나온 선수들도 많잖아요. 내부에서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물론 팀에 불만이 있는 선수들은 있을 수는 있겠지만요. (오)범석이 형도, (김)오규 형도 나가면서 팀이 힘들었어요. 저는 불화설이 나올 때도 '내가 이적해서는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주위의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얽매고 들어왔다. 선수가 심리적으로 흔들리니 경기력이 좋을 리 없었다. 단순히 임채민의 문제가 아니라 영입된 선수들 대부분이 공유한 문제점이었다.


"(고)무열이랑 원래도 알던 사이지만 팀에 와서 더 가까이 지냈거든요. 또래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너무 힘들면 같이 맥주도 한 캔씩 마셨고. 강원에 와서 하는 축구가 새롭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성적은 잘 안 나오고 각자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부담감이 크더라고요. 이적해 온 선수들이 다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 "내가 제일 못하더라" 공격형 팀의 수비수로 산다는 것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임채민은 스스로에게 만족하진 못했다. 김 감독의 축구가 변모한 만큼, 전술에 녹아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강원은 지난 시즌과 다른 목표를 갖고 전술을 구상했다. 기본적으로 점유율을 높여 상대의 공격 기회를 최소화하겠다는 콘셉트에서, 과감한 공격으로 골을 노리는 것을 노렸다. 시즌 초반 선수 배치가 2-3-5 형태가 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따르지 않으면서 변화를 줘야 했다.


임채민은 대학 시절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았기에 나름대로 적응엔 자신이 있었다. 성남FC와 상주 상무에서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았기 때문일까. 공격형 팀에 걸맞는 과감한 수비를 펼치지 못했다.


"대학 때 (김병수) 감독님 지도를 받아서 수비 라인 컨트롤이나, 최후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원에 와 보니까 제가 제일 못하더라고요. 분석관한테 영상을 받아서 계속 수비 장면을 봤어요. 라인 맞추는 것도 조금씩 늦었고, 앞뒤 공간이 너무 많아서 힘들더라고요. 선수도 막아야 하는데 (수비 뒤) 공간도 중요하니까. 공수 균형상 수비들이 더 올라가서 눌러주는 게 맞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초반엔 그게 잘 안 되고 애매모호했어요. 어중간하다 보니까 더 두드려 맞게 된 것 같아요. 차라리 확실히 (전진해서) 밸런스를 맞춰줬으면 좋았을텐데. 역습이 나오기 전에 끊었으면 되니까요. 사실 중앙선 위까지 밀고 올라가도 되는데 제가 머릿속에 선을 만들어버린 것 같아요. 그게 버릇처럼 되고, 공격수가 근처에 없어도 뒤에 머물렀던거죠. 스스로 애매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임채민의 반성엔 강원의 고민도 녹아 있다. 공격을 펼치려면 안정적인 수비는 필수다. 뒷문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공격에 온전히 힘을 싣기도 어려웠을 터. 다행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노력을 꾸준히 한 결과, 시즌 말미엔 김 감독의 구상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작년엔 볼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비하고 힘들게 하려고 했잖아요. 올해는 훈련 때도 직선적인 걸 많이 했어요. 작년과 다른 콘셉트를 두고 수준을 올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공을 더 쉽게 잃어버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선수들의 볼 터치가 더 좋았다면 더 나은 축구를 했겠지만요. 그래도 시즌 막바지엔 감독님의 훈련에 맞춰서 변하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공을 빼앗으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인식을 바꾸게 됐고요. 제일 앞사람을 보고 연결했어요. 그런 장면으로 골을 넣은 건 아니지만, 역습을 일단 전개해보고, 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공을 유지하고요. 괜히 훈련한 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내년에는 더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훈련이 해답이다. 강원의 색에 맞춰 적응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공격 쪽에 중심을 두는 만큼 수비는 더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톱니바퀴같은 조직력을 갖춰야 한다.


"동계 훈련에서 보완하고 싶어요. 감독님도 저 혼자 처져 있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아주 수비적인 팀에도 있어봤고, 다른 축구를 접하다보니 적응에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역습은 강원의 축구에선 무조건 감수해야 할 위험이죠. 그래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도 팀이 더 공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수비에서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야죠. (올해는) 포백이든 스리백이든 선수들끼리 조금 뒤죽박죽 움직였어요. 그래서 더 올라가야 할 때 못 올라갔던 것도 있어요. 저희도 개인적인 실수들은 제쳐두고서라도, 공통적인 과제를 두고 수비끼리 많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 "파이널B행 이후" 부담감을 내려놨다


코로나19로 A매치 휴식기도 없이 시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1경기를 마치더라도 그 잔상은 다음 경기까지 이어졌다. 시즌 종료 뒤에야 냉정히 자신을, 그리고 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즌을 마치니까) 몸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하더라고요. 이번에는 무기력해지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서 올해가 힘들긴 힘들었나 싶어요. 이 팀의 기존 선수와 신입 선수들이 아픔과 승리의 기쁨을 모두 나누면서 팀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제 스타일을 주변에서도 알게 되고,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이었죠."


부담감 속에 치르는 시즌의 고단함을 알게 됐다. 시즌 내내 '해내야 한다'고 압박하던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경기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강원은 하위 스플릿에서 3승 1무 1패의 호성적으로 일찌감치 강등 위기에서 벗어났고 최종 7위로 시즌을 마쳤다.


"감독님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가진 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이 많으면 플레이에도 그게 묻어나온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을 땐 좀 부담감을 내려놨어요. 간절한 팀이 이긴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강등 싸움을 여러 번 해봤는데 너무 간절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실수를 할까봐 공이 오는 게 무서울 때도 있고요.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 간절히 바랐던 상위 스플릿에 못 들고,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올 한해 정말 힘들었지만 후회 없이 했으니까. 여기 와서 실패라고 보지 않아요.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종 성적에 대해서 만족할 순 없다. 그렇지만 임채민은 냉정히 강원FC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는 것엔 의미를 뒀다. 그리고 다음 시즌엔 성적으로 실력을 입증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자신이 경험했던 '좋은 축구'가 결과까지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강원이 강등 걱정을 좀 덜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엔 K리그2에도 있었고 하위권에 머물던 팀이잖아요. 그런데 벌써 팬들의 기대는 저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전 이제 한 계단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예전의 강원처럼 다른 팀들이 무시한다는 생각을 안 받았어요. 전북 현대, 울산 현대하고 붙더라도 예전하고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저희랑 하면 짜증난다는 말을 들으면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끼고요. 팬들의 기대가 높아졌는데, 지금은 저희가 바뀌고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기업 구단은 아니지만 강원은 확실한 색이 있는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중상위권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 2021년 각오는 "이판사판"


실패한 경험은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임채민은 2020시즌 겪은 시행착오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내년엔 부담감을 덜고 '좋은 축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병수볼' 이야기가 나오면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올해는 여러가지 부담감에 시달렸고, 그걸 이겨내지도 못했고, 그게 또 제 능력이죠. (내년엔) 성적이 안 나면 오히려 받아들이고, 성적이 나면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간 결과라고 생각하려고요. 사실 더 좋은 선수가 와서 강원의 축구를 더 잘 펼칠 수 있다면 전 백업으로 물러나도 괜찮아요. 저도 경쟁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안 뛴다고 해서 팀에 해를 끼치진 않을 거에요."


이번 시즌 강원은 국내 선수 영입에 공을 들였다. 대신 사실상 외국인 선수 없는 시즌을 보냈다. 이제 탄탄한 국내 선수들을 보유했으니 다음 시즌 좋은 외국인 선수가 온다면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더불어 임채민은 강원과 김병수 감독의 축구에 대한 신뢰를 확실히 밝혔다.


"좋은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다른 선수들도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더 집중 마크를 받는 선수가 있으니까, (고)무열이나, (김)승대나, (조)재완이나, (김)지현이나 더 축구가 쉽지 않았을까요? 그런 상상은 해보죠. 일단 감독님 말씀대로 올해는 기반을 다졌다고 생각해요. 색깔을 뚜렷하게 하고, 지금 선수단이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죠. 그렇지만 국내 선수들로만 해서 안 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좋은 외국인 선수가 오든 아니든, 혹은 누가 떠나더라도 남아 있는 선수들로 어떻게든 해나갈 거에요. (국내 선수들만 있는) 상주 상무도 올해 4위를 했잖아요."


임채민은 2021시즌 각오를 '이판사판'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부진을 인정하면서, 내년엔 후회 없이 싸우겠다는 뜻이다. 결과가 모든 걸 말한다는 스포츠계에서 이젠 순위로 자신과 강원의 저력을 입증하고 싶다는 뜻. 결과를 낸 뒤엔 더 과감하게 인터뷰를 하겠다는 당찬 포부까지 남겼다.


"내년에는 아예 내려놓고, '이판사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결과 상관하지 않고 후회없이 보내고 싶고. 작년보다 눈치도 덜 볼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결과를 낸 다음에 속 시원히 인터뷰하고 싶어요. 결과가 나왔으니까 하고 싶은 말도 다 하고요.(웃음)"


사진=강원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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