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휘두른 부패 의회..일주일 사이 대통령 두 번 바뀐 페루
시민들 "의회 쿠데타" 시위로 맞서자 중도 성향으로 재선출
[경향신문]
페루에서 일주일 사이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다. 의회가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전 대통령을 정략적 이유로 탄핵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의회는 탄핵 다음날 의회를 대변하는 첫번째 임시 대통령을 세웠으나, 거센 탄핵 반대 시위에 부딪혀 닷새 만에 물러났다. 그러자 의회가 시민 뜻에 따라 다시 임시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두번째 임시 대통령은 8개월 남짓 임기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 정국 혼란을 수습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AP통신과 현지 엘코메르시오 등에 따르면 페루 의회는 16일(현지시간) 중도 성향의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의원(76)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현재 대통령·부통령 궐위 상태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사가스티 의원은 17일 임시 대통령에 취임하며, 2016년 대선 이후 한 대통령의 임기를 채우는 네번째 대통령이 된다.
4년 전 대선에서 승리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은 부패 의혹이 터진 후 의회에서 탄핵 위기에 직면하자 2018년 사임했다. 당시 부통령이던 마르틴 비스카라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비스카라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의혹으로 지난 9일 의회에서 탄핵당했다. 다음날 마누엘 메리노 당시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시민들이 연일 탄핵 반대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시위 현장에서 사망자가 나오자 지난 15일 사임했다.
시민들은 “부패한 의회 정치 엘리트”들이 정략적 이유로 비스카라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고 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비스카라 전 대통령은 반부패 개혁을 추진, 의회와 갈등의 골이 깊었다. 전체 의원 130명 중 60여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의회가 탄핵을 강행하자 시민들은 “의회 쿠데타”라 맞선 것이다.
페루 정치분석가 알론소 카르데나스는 “페루에선 시장보다 대통령 축출이 쉽다”며 이번 사태가 페루 정치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의회가 ‘도덕적 무능’이란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데,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도 의회 내 기반이 약하면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비스카라 탄핵에 반대했던 사가스티 의원이 뽑히자 환호했다. 비스카라 전 대통령도 축하의 뜻을 전했다. 공학자 출신의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은 세계은행과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했으며 중도정당 창당에 참여해 지난 3월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그는 이날 의회 밖에서 시민들과 만나 “더 나은 페루를 만들기 위해 봉사할 것”이라며 ‘신뢰’와 ‘희망’을 가져달라고 했다. 사무엘 로타 국제투명성기구 페루지부장은 “사가스티 대통령의 첫 임무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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