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바이든 '다자주의 복귀' 선언에도 떨떠름한 유럽 동맹들

박수현 기자 2020. 11. 17. 16: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과 함께 다자주의 외교 복귀를 선언했지만 유럽 동맹국들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미국과 대립해 온 프랑스는 ‘더이상 미국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독일 또한 미국과의 협력을 희망한다면서도 ‘유럽은 이전보다 더 자주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0년 11월 10일 엘리제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각) 르 그랑 콩티넝(Le Grand Continent)과 인터뷰에서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유럽은 독립적인 방위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처럼 유럽도 지속적으로 자주권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미군 보호에 계속해서 의존해야 한다’는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독일 국방장관의 발언에도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크람프카렌바워 장관은 앞서 지난 2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보낸 기고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 공유 전략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미국과 협력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핵 위협을 억제하는 미국의 역할을 다른 누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국방 주권을 갖고 있어야 미국이 우리를 동맹국으로서 존중할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내 입장을 공유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얼마나 나빠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 한번 유럽을 낮춰봤는데 두번은 못하겠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유럽군(軍) 창설을 피력한 데 이어 지난해 "나토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며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미국을 향한 마크롱 대통령의 불신은 지난 10일 바이든 당선인과 전화 통화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당시 통화에서 기후, 안보,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찰을 빚어온 나토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비교적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온 독일도 미국을 온전히 믿기는 주저하는 모습이다.

슈테판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메르켈 총리도 나와 같은 입장일 것’이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다만 "유럽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데에 독일은 프랑스와 100% 동의한다"고 했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더욱 독자적으로 행동할 역량을 구축하는 데에 프랑스와 의견을 같이 한다"며 "메르켈 총리는 우리가 이 노선에서 멈춰선 지 오래됐지만 계속해서 나아가야한다고 말했다"고도 부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나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새 행정부에 대한 유럽의 기대는 당초 낮았다. 백악관 주인이 바뀌어도 미국이 초당적 합의정치에 의해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산적한 국내 문제에 집중하느라 당분간 대외정책 변화를 자제할 것이며, 국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 이전 미국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바이든은 그동안 트럼프가 만든 모든 외교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여력도 열정도 없다"며 " 당분간은 트럼프 대통령의 후유증이 그대로 존속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신뢰도도 바닥이다. 유럽의회에서 대(對)중국 관계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독일 녹색당 소속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의원은 미국을 가리켜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는 예전만큼 빛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중동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유럽연합(EU)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에 유리한 정책을 펼치면서다.

미국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국경지대의 미군을 철수한 것도 동맹에 큰 타격을 입혔다. 나토군 주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와 사전 협의 없이 나토에 적대적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한 뒤 이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 명목으로 나토 탈퇴도 위협 중이다. 지난 7월에는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1만2000명가량을 감축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밖에도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란과 핵협정 폐기, 국제공역협정(OST) 탈퇴, 유엔세계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UNESCO) 회원국 자격 포기 등으로 유럽 지도자들을 실망시켜왔다.

문제는 이런 미국에 적응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대미 의존을 줄이면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보 달더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2월 NYT와 인터뷰에서 유럽이 중국과 러시아 쪽에 기우는 식으로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니콜라스 번스 전 미 국무부 차관은 "유럽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제3의 축을 세우려 할 수도 있다"며 "미국에 전략적으로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