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은 왜 산으로 올라갔을까

박기용 2020. 11.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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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솔루션, 구미·함평·함양 GIS 분석
도로·주택과 최대 1km 떨어져야
입지규제 면적 빼면 1%도 안돼
"사실상 신규설치 불가능한 수준"
세종시 세종호수공원 주차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모습. 연합뉴스

#1. 경기 여주성결교회는 110면짜리 교회 야외 주차장에 100㎾ 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려고 지난 8월 여주시청에 문의했지만 ‘설치 불가’ 회신을 받았다. 근처 도로에서 2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태양광 이격거리’ 조례 때문이었다. 주차장은 도로에서 20m가량 떨어져 있어 차량운행과는 무관했다. 조례를 따르면 주차면 4개 면적인 50㎡ 이하(10㎾ 규모) 시설만 설치할 수 있었다. 교회 관계자는 “교회 건물 지붕과 주차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비 가림막 구실도 하고 수익사업도 될 것 같아 검토했는데 규제 때문에 지금은 검토를 중단했다”라고 말했다.

#2. 경남 하동군에서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하는 정아무개씨는 입법예고된 도로 이격거리 100m 조례를 고려해 사업계획을 짰다. 이 조례는 2018년 12월 갑자기 거리가 300m로 바뀌었다. 정씨는 현재 하동군 의회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하동을 비롯해 경남과 전남, 경북 지역에서 태양광 사업을 한다는 그는 “실제 사업을 해보면 지자체들이 중앙정부의 장밋빛 정책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의회는 조례 제정을 입법예고도 없이 즉석에서 하고, 개발행위허가 결과는 시장·군수의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110면 규모의 야외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려 했던 경기 여주성결교회. 근처 도로 가장자리에서 2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태양광 이격거리 조례 때문에 설치가 불가능하다. 여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경기 여주시 북내면 지내리 농경지 모습. 주택에서 500m, 도로(2차선)에서 200m 떨어져야 하는 태양광 이격거리 규정에 따라 이곳에서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가 가능한 곳은 농경지 한 가운데 우량농지 뿐이다. 여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태양광이 산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산에 노력 중이지만,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태양광을 기피하는 주민들 민원에 각종 입지규제를 만들고, 설치 장소를 찾지 못한 태양광 패널이 인적 드문 산으로 내몰린 것이다. 지난여름 기록적 장마에 산비탈에 자리한 태양광 발전 시설이 일부 산사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묻지마 태양광 규제’도 있었던 셈이다. 높은 부동산 임대료 탓에 대도시권에선 태양광 발전 사업이 경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입지규제가 지속하는 한 정부 태양광 보급 목표 달성은 물론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도 어려울 수 있다.

기후운동단체 ‘기후솔루션’은 경북 구미시, 전남 함평군, 경남 함양군이 시행 중인 태양광 발전 입지규제(10월 기준)를 지리정보체계(GIS)를 이용해 분석했다. 규제를 피해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면적은 경북 구미시 0.09%, 전남 함평군 0.78%, 경남 함양군 0.64%만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에선 사실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농지법 등 상위법 규제로 제외되는 면적과 경제성이 없어 사실상 태양광 사업이 어려운 임야까지 제외한 것으로, 입지규제만으로 제외되는 면적이 해당 기초자치단체 면적의 46~67%에 이르렀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도로와 주택으로부터 500m 이상 떨어져야 하는 구미시의 입지규제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구미시 내 태양광 설치가능 면적은 0.09%에 불과해 사실상 신규 설치가 불가능하다. 상위법상의 규제 면적과 경제성 없는 임야까지 제외한 결과다. 아래는 함평·함양군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로, 설치 가능 면적은 각각 0.78%, 0.6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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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지침에도 규제 1.5배 늘어

구미와 함평의 경우 관련 조례에 따라 도로와 주택으로부터 5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 함양은 도로에서 800m, 주택에서 300m 이격을 둬야 한다. 3곳 모두 관광지·관광단지 500m 이내엔 태양광 발전을 설치할 수 없다. 구미·함평은 국내에서 태양광 발전 잠재량이 가장 많은 경북·전남 지역을 대표한다. 지리산 근처인 함양은 산지가 많은 일반적인 국내 지자체 상황을 고려해 선정됐다.

분석을 담당한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농촌 지역 기초지자체가 도입해 운영 중인 이격거리 규제 영향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중소형 태양광 사업자 입장에선 해당 지역 사업 추진이 원천 봉쇄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태양광 입지규제는 최근 몇 년 간 점차 확산해왔다. 기초자치단체가 지역주민 민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대표적 민원은 중금속 오염, 전자파, 빛 반사, 경관 저해 등이다. 태양광 패널엔 납, 비소, 크롬,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쓰이지 않는다. 가정에서 쓰는 전자레인지보다 전자파가 적다. 태양광 패널이 빛을 반사한다는 우려 역시 과장됐다. 태양광 모듈은 빛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빛을 흡수하는 특수코팅을 한다. 태양광 보급을 탈원전 정책과 연계시키는 진영에서 퍼뜨린 가짜정보, 과장된 주장에 영향 받은 주민들이 많다.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는 각 기초자치단체의 태양광 입지규제를 폐지하는 지침을 발표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이후 규제는 오히려 늘었다. 현재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이 넘는 123곳에서 태양광 입지규제를 시행 중이다. 2017년 83곳에서 1.5배 늘었다. 대부분 도로·주택 이격거리 규제다. 도로법상 도로뿐 아니라 농도 같은 농어촌도로와도 이격거리를 뒀다. 심지어 도로와의 이격거리를 1㎞까지 설정한 곳(경북 울진·청송군, 전남 구례군)도 있다. 주택이 단 한 채만 있어도 이격거리를 적용하는 기초자치단체는 83곳(67%)이었다. 자연경관 및 미관 훼손(경북 포항시), 주변 환경 영향(전남 장성군) 같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규제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격거리 규제는 결과적으로 ‘그린뉴딜'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입지규제가 늘면서 소규모 태양광 신규 보급 용량은 줄었다. 2016~18년 특·광역시를 제외한 도 단위 태양광 신규 보급 용량을 보면 전체적으로 7.7%가 줄었다. 강원(58.2%), 경북(13.3%)만 늘었을 뿐 전북(-30.0%), 경남(-20.7%), 충북(-20.2%)은 크게 감소했다(아래 표). 국내 태양광 보급 용량은 전체적으로 늘고 있지만 주로 3㎿ 이상 대규모 사업이 늘어난 덕이다. ‘소규모 분산형'인 재생에너지의 애초 취지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마련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 20%)을 보면,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목표 63.8GW(통상 1GW=원전 1기) 가운데 가장 많은 57%인 36.5GW를 태양광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 중 절반인 17.5GW가 농가나 협동조합 등 소규모 사업에 의한 것이다. 입지규제가 이대로 확산하면 소규모 태양광 보급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전담조직까지 만들며 태양광 보급에 적극적인 경기 여주시도 시의회가 민원 대응 과정에서 만든 조례로 최근 보급량이 급감했다. 김나건 여주시 에너지자립팀 주무관은 “재생에너지 3020 계획에 따른 여주시의 사업용 태양광 보급 목표량을 보면 해마다 40㎿ 이상을 보급해야 하는데 이격거리 규제로 2018년 이후 급감했다. 올 상반기 보급량이 2.7㎿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저수지를 개방해놓고 그 물꼬를 틀어막고 있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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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 이격은 가축분뇨시설뿐

이런 사정은 다른 주요국과도 다르다. 국내에서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려면 발전사업 허가(산업통상자원부 관할)를 받은 뒤 다시 지자체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와 달리 일본은 태양광 발전이 개발행위허가 대상이 아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미네소타주가 이격거리를 뒀지만 화재나 안전, 재산권 등의 이유로 제한한다. 이격거리도 건물에서 9~46m(30~150피트), 차도에서 7.6m(25피트) 정도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도로 10m, 철도 30m 이격을 두면 설치가 가능하다.

국내 기초자치단체가 태양광 발전에 적용하는 이격 기준은 다른 시설에 대한 규제와 비교해도 과도하다. 전북 임실군은 재활용시설, 고물상, 공장, 폐차장, 묘지, 축사 등에는 도로·주거지 이격거리 규제만 적용한다. 반면 태양광에는 이에 더해 공공시설부지, 문화재, 전통사찰과도 이격거리를 두고 있다. 경남 고성군은 축사를 세울 때 도로에서 100m를 떨어뜨려 놨지만, 태양광은 500m를 떨어뜨리도록 했다. 500m 규제 대상은 태양광 말고는 가축분뇨 재활용시설뿐이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표준조례를 통해 중구난방인 기초자치단체 조례를 정비하거나 신재생에너지법을 개정해 이격거리를 제한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국회,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민 입장에서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지역에 별 도움 안 되는 외부자’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것도 태양광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낮추는 문제로 꼽힌다. 개발행위허가 과정에서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보니 사업자들이 초기 주민 설득을 위해 마을 발전기금이나 주민 우선고용 등을 제안하기 마련인데, 이런 행위조차 불법·편법적인 매수 행위로 여겨지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급하지만, 이런 시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야 하는 특성상 그만큼 많은 입지가 필요하고 지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국정감사에서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문제를 제기했던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부평갑)은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불편은 주민이 부담하고 이익은 외지인이 가져간다는 인식이 이격거리 규제 도입의 원인이다. 지역주민을 발전사업에 참여시켜 의견을 수렴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연합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2008년 개발한 주민 수용성 향상을 위한 의사소통 매뉴얼(ESTEEM) 등 각종 수용성 제고 방안이나 주민을 발전사업의 주주로 참여하게 하는 발전수익 공유제의 확산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 중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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