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 법무장관, '비밀번호 자백법' 제정 깨끗이 접으라

2020. 11. 1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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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를 강제하는 이른바 ‘비밀번호 자백법’ 제정과 관련해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디지털 법안을 연구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라며 “아직 법안 제출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직은 법안 ‘연구 단계’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 사례를 들어 “법 제정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공개 지시한 데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여전히 법 제정 의사를 굽히지 않은 것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법 제정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비등한데 언제까지 이 소모적 논란을 이어갈 작정인지 답답하다.

‘비밀번호 자백법’이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은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헌법 12조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른바 ‘자기부죄거부의 권리’인데 ‘비밀번호 자백법’은 이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 및 인권 보호라는 검찰개혁 방향에도 역행한다. 우선 법 제정의 동기부터 비상식적이다. 추 장관은 이 법 제정을 언급하며 한 검사장이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검·언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방지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사례를 보더라도 비밀번호 자백 강제는 테러나 아동성착취 등 일부 중대 범죄에 적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설혹 디지털 신종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법 제정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만큼 가급적 정치적 논란을 피해 신중하게 공론화해야 맞다. 그런데 추 장관은 이를 특정인을 겨냥한 법으로 인식되게 했다. 결국 윤 총장을 겨냥해 법 체계를 바꾸고 헌법정신까지 거스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여당에서도 “한동훈방지법으로 명명된 게 너무나 유감스럽다”(백혜련 의원)는 탄식이 나오겠나.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비밀번호 자백법’ 제정 발상은 헌법상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며 “당론으로 밀고 가는 것처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장관을 옹호해온 박범계 의원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민변, 참여연대, 서울변회에 이어 대한변협도 이날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행위”라는 성명을 냈다. 보수·진보 시민단체와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이 분출하는 매우 드문 상황이다. 추 장관은 이쯤에서 법 제정 시도를 깨끗하게 접는 게 옳다. 추 장관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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