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칼럼] 정권에 자유를 반납한 국민

2020. 11. 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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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문재인 정권의 국정철학 핵심 가운데 하나는 '나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나의 삶에 필요한 소득, 일자리, 건강, 노후, 자녀교육 등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 국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투입되는 예산은 2019년 161조원, 2020년 182조원 그리고 2021년에는 200조원이다. 나라예산의 3분의1 이상을 보건 복지 고용 그리고 교육에 퍼붓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그런 어젠다를 지지하는 세력이 유권자 중 최소한 40%를 훨씬 웃돈다. 그런 지지태도는 원하는 것을 정부가 해주기를 바라는, 따라서 정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심성이다. 시민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국가가 선택하고 책임져주기 바란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보는 태도다. '어버이주의'(parentalism)라는 새로운 정치적 개념이 등장한 건 그래서다. 그런 개념은 이미 잘 알려진 '온정주의'(paternalism)와 전혀 다른 성격이다. 이것은 전지한 통치자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선호를 무지한 시민들에게 강제로 부과해야 한다는 엘리트적 태도다.온정주의에서는 통치자에 대한 지지는 강제적이고 하향식인 반면 어버이주의에서 그것은 자발적이고 상향식이다.

어린아이는 어버이 품에 안겨서 보호받을 때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면 붙들어주고 상처가 나면 치료해주고 행동이 지나쳐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세상이 불확실하다고 해도 두려움 없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성장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환경에 직면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일자리나 소득, 건강이나 노후도 불안해져서다. 자녀를 보육하고 교육시켜야 하는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책임·독립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다. 한 때는 성황당, 신령님, 종교 등 신(神)에 의지했다. 신은 우리를 부모처럼 돌봐준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에서 불확실한 세상에서 안심하고 삶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 이후 신은 죽었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망망대해에 버려진 것이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홀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책임이 자유에 대한 공포를 유발한다. 낯선 사람들로 구성된 시장과 거대한 기업 등은 믿고 의존할 수 없다. 모두 낯설고 두렵다. '우리'가 아닌 '그들' 뿐이다. 시장공포증이 지배한다.

의지할 유일한 곳은 국가 뿐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인기 있는 구호인 이유다. 신의 죽음과 국가의 탄생은 동전의 양면이다. 시민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는 정부가 좋다. 어린아이를 키워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소득을 늘려주고, 병을 치료해주고, 늙으면 보살펴주는 등,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기만 하면 자유는 희생돼도 좋다. 독립보다 예속이 더 좋다는 뜻이다. 이게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 도피'가 아니던가. 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정권을 믿고 따른다. 어버이주의가 불러온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실업, 성장, 양극화, 빈곤 등에서 지난 1995년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경제실적을 남겼다. 말 잘 듣는 자기진영을 위해서라면 납세자를 희생시켜 선심성 복지를 확대했고 미래세대를 희생시키는 전대미문의 빚잔치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세력은 떠받들고, 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낳는 등 국민에게 번영을 안겨주는 기업들은 각종 규제를 통해 박해했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또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초토화시킨 니콜라스 마두로의 사회주의도 국가는 어버이처럼 선하고 전지하다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등장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유를 반납하여 노예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애덤 스미스와 이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성장 고용 분배 건강 갈등 인구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이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시장은 두려움의 대상도, 없애버릴 대상도 아닌 적응해야 할 대상이다. 진정으로 두려운 건 국가를 부모로 착각하는 어버이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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