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미국으로' 바이든 정책 분석

김은지 기자 2020. 11. 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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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 경제·사회·대외정책 전반을 복원하려 한다.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견제'에는 트럼프와 결을 같이한다.
ⓒAP Photo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7월28일 델라웨어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단에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 친구야(It ain’t over, man!).”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4위(2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와 5위(2월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초반 하위권으로 시작한 조 바이든 후보가 자신의 캠프에 한 말이다. 실제로 같은 달인 2월29일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비당원도 참여 가능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1위로 올라서면서 반전의 모멘텀을 얻었다. 그 기세로 3월3일 ‘슈퍼 화요일’ 10개 주에서 1등을 차지하고, 8월18일 민주당 대선 공식 후보가 됐다. 바이든의 출발은 매번 불안했던 셈이다.

11월3일 대선의 본선 개표도 초반(한국 시각 11월4일 오후)에는 바이든이 박빙 열세였다. 그러다 경합 주들에서 우편투표 용지가 쏟아져 나오면서 바이든이 미국 제46대 대통령에 오르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을 암시하며 재검표와 소송을 예고(트럼프 불복에, 미국은 골치가 아프다 기사 참조)했지만, 바이든 또한 트럼프의 몽니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태세다.

11월5일 밤 12시 현재(한국 시각), 바이든은 대선 승리 선언까지는 내놓지 않았지만 인수위 홈페이지를 공개한 상태다. 홈페이지 주소(buildbackbetter.com)는 바이든의 경제정책 슬로건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에서 따왔다. 바이든 캠프의 슬로건 전반에는 회복·재건과 같은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망가뜨린’ 미국 경제·사회·대외 정책 전반을 복원하겠다는 의미다. 바이든판 ‘비정상의 정상화’다.

‘더 나은 재건’ 경제 프로젝트는 전통 민주당 지지층이었지만 2016년 대선에서 떠나간 이들을 겨냥한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경쟁 끝에 경선에서 패배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열광했던 젊은 층, 북동부 제조업 쇠퇴로 일자리를 잃어가는 러스트벨트(Rust Belt)의 블루칼라 노동자 등이 집중 타깃이다.

최저임금 인상,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 거대기업 법인세 인상, 부자증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자유와 함께 책임도 강조하는 민주당의 전통 노선에 버니 샌더스로 대표되는 진보 색깔을 가미했다(바이든 승리해도, ‘트럼프 시대’는 계속 된다 기사 참조). 지난 5월 바이든과 샌더스는 공동 태스크포스를 꾸려 민생 관련 공약들에 합의한 바 있다.

ⓒREUTERS2019년 7월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가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

바이든은 연방의 법정 최저임금을 시급 7.5달러(약 8500원)에서 15달러(약 1만7000원)로 두 배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버니 샌더스의 대표 공약을 받아들인 것이다. 2조 달러(2253조원)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전기 차와 배터리 생산 등에 미국 정부가 투자하면, 이와 관련된 중간재(통신 장비·건축 자재)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중간재들을 미국 내 기업으로부터 구매함으로써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프로젝트다. 바이든 캠프의 홈페이지 공약 사항에 따르면, 새로운 일자리 500만 개가 만들어 진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등장한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처럼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미국 국산품 사기)’을 내세운다. ‘뭔가 살 수 있는’ 가장 크고 강력한 주체는 정부다. 다만 트럼프 정부는 ‘바이 아메리칸’을 주장했으되, 연방정부가 국내 업체들로부터 ‘의무적으로’ 사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임기 동안 연방정부가 4000억 달러(약 450조6000억원) 규모로 국산품을 의무 구매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제조업 부흥과 국내 일자리 창출을 겨냥한다.

증세 조치로 재원 마련 계획

일자리는 예민한 이슈다. 바이든은 2000년대 들어서도 ‘자유무역’에 친화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은 미국의 일자리를 해외로 수출한다’는 트럼프 쪽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대선에서는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은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미국 정치권에서 나오지 않았던 국가 주도의 기술개발에 대한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임기 동안 3000억 달러(약 337조9500억원)를 5G·AI·전기차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국가 주도 기술혁신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벤치마킹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당장 따라오는 질문은 재원 마련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조치를 상당 부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미국 출신의 초국적 기업들에 대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는 등 파격적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바이든은 법인세율을 28%로 올릴 계획이다. 그는 “아마존이 연방 소득세로 아무것도 내지 않던 시대는 끝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자증세도 염두에 둔다. 연소득이 40만 달러(약 4억5000만원)가 넘는 개인에게 소득세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올리는 안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총 4조 달러(약 4506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앞날이 만만찮다. 증세는 입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2020년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 결과, 상원에서는 ‘공화당 다수’가 2년 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친환경 인프라를 강조하는 바이든이지만 오카시오 코르테스 등 민주당 진보파가 주장해온 ‘그린 뉴딜(파격적인 기후변동 대응으로 일자리까지 늘리겠다는 프로그램)’을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친환경 기술 연구에 10년 동안 연방 재정 1조7000억 달러(약 1915조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2050년까지 미국에서도 탄소 중립(Net-Zero Emissions)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탄소 중립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대응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다.

ⓒEPA2013년 12월4일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이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네바다 6석 확보를 남겨두고 ‘당선 유력’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던 11월5일(한국 시각) 저녁, 바이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정확히 77일 안에 바이든 행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겠다”라고 썼다. 그가 (당선이 확정된다면)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는 첫날이 2021년 1월20일이다. 그날 미국을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시키겠다는 약속이다. ‘당선 일성’이며 바이든 행정부의 1호 실천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협정이다.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2℃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들을 담았다. 온실가스 배출 1~3위 국가인 중국·미국·인도(순위순) 등 195개 국가가 서명해, 2016년 11월 발효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7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한다고 바로 탈퇴할 수는 없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공식 탈퇴일’이 2020 미국 대선 다음 날인 11월4일이었다. 바이든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다시 가입하고 세계 주요 탄소배출국들의 정상회의를 소집해 필요한 조치들을 더욱 빠르게 추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재가입 절차는 간소한 편이다. 행정명령으로 유엔에 파리기후협약 가입 의사를 밝히고 한 달이 지나면 자동 가입이 된다. 반(反)트럼프 세력에겐 상징적 장면이다. 트럼프의 폭주를 막기 위해 바이든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트럼프 대못 뽑기’ 혹은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정책 뒤집기)’의 서막과도 같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임기 첫날 처리하겠다고 밝힌 또 다른 이슈가 있다. 이민정책이다. 트럼프는 ‘미국-멕시코 장벽 설치’ 등으로 대표되는 반(反)이민 정책을 거세게 추진해왔다. 2016년 대선 당시엔 보수적인 백인 표를 끌어들인 묘약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시작 일주일 만인 2017년 1월, 이슬람 7개국 시민의 미국 입국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사인했다. 4년 임기 내내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 이민자 자녀들의 인권 문제가 불거졌다. 남미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부모와 강제로 분리되는 아이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은 부모가 범죄 혐의로 체포되면, 자녀와 격리시킨다.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조차 ‘부모·자식 강제 격리’를 반대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바이든은 이들을 재결합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임기 첫날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의 우선순위는 국내 이슈이지만, 그렇다고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4년 동안 맡은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8년간 부통령직을 수행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을 더 쌓았다. 바이든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위험하고 틀렸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4년 동안 ‘미국 일방주의’로 운행했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으며, 다자주의 노선(여러 나라가 같은 이해를 갖는 국제문제에 협력해서 대응하는 것. 무역협정도 다자주의의 대표 사례 중 하나)을 사실상 배격했다. ‘동맹국이라고 하지만 한국·독일·일본 등 잘사는 나라에 왜 미국 돈을 들여서 미군을 진주시켜야 하는가’라는 트럼프의 질문은 미국 외교의 새로운 문법이었다. 쇠락한 지역의 백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장벽을 비판하는 G7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는 동맹국들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공화·민주당 노선 차이를 뛰어넘어 미국 워싱턴 정가를 놀라게 한 반(反)주류(Anti Establishment) 행보였다. 2018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메르켈·트뤼도 등 나머지 6개국 정상과 맞서 있는 사진은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이든은 트럼프식 외교에서 벗어나 다자주의로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국이 전 세계 리더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3·4월호에 대놓고 “왜 미국이 다시 전 세계를 이끌어야 하는가(Why America must lead again)”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미국이 국제 무대를 선도해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인도네시아, 유럽,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까지의 관계 강화를 주장한다.

ⓒAFP PHOTO2018년 6월9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다.

중국 견제하지만 방법론은 달라

다만 ‘중국 견제’에는 트럼프와 결을 같이한다. 사실 반중 정서와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은 미국 전반의 분위기다. 미국 연구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6~7월 ‘중국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는 68%,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는 83%에 달했다. 미국인들은 정파에 관계없이 중국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바이든 또한 미국이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반칙을 서슴지 않는 ‘반인권 국가’라는 인식이 있다. 중국이 불공정한 게임을 펼치므로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난다. 트럼프처럼 일방적 관세 부과로 중국과 분쟁을 벌이기보다, 민주주의 체제의 동맹국들과 연대해 중국을 압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코로나19 대응은 미국의 새 리더가 받아든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미국은 이미 코로나19로 23만명 이상이 숨졌다. 바이든은 이를 ‘트럼프 리더십 실패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마스크조차 정쟁의 도구로 만든 트럼프를 강력하게 비난한다.

바이든은 자신이 대선 승자로 공식 선언되면, 제일 처음으로 의사에게 전화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의 임기를 연장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안을 발표할 수 있게 보장한다고 공약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시하고 과학과 의학을 믿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와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바이든 캠프의 프로젝트엔 ‘연방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 검진 및 추적, 그리고 국가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코로나 검사를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확진자 접촉자를 추적하기 위해 10만명의 공공고용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해야 하는 시험대에도 올랐다. 바이든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고,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미국의 연금급여인 사회보장금(Social Security Payments)을 매월 200달러(약 22만5000원)씩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4월25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바이든은 세계 속 미국의 지위, 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을 미국으로 만든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출마의 공식 이유에 대해 “우리는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군 최고 통수권자(Commander -in-Chief)이자 최고 치유자(Healer-in-Chief)를 자처한 그는 2021년 미국을 얼마나 회복시킬 수 있을까. 뒷심의 강자인 그의 4년이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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