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윤석열 파면, 국회는 왜 책임을 회피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65조 1항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 기각 결정문에서 대통령 탄핵의 경우에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고려해 단순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 외에 '헌법이나 법률 위배의 중대성'을 요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리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는 이유
탄핵 사유에 대해 설명한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 때문이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두 사람을 모두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당 관계자들조차도 추미애 장관의 잇단 이상 행동을 더는 두둔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언제든지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의 경우와는 달리,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마음대로 해임하거나 사표를 내도록 압박하는 것은 위법이다.
검찰청법 제12조 3항은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37조(신분보장)에서는 "검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이나 적격심사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또는 퇴직의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정해놓고 있다.
왜 일반적인 정무직 공무원과는 달리 검사 특히 검찰총장의 경우 임기 2년을 채우기 전까지 탄핵이나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일까? 검찰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정부와 관련된 일도 수사하거나 기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이런 일을 하더라도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법에 마련해놓은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대놓고 법을 어기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 검찰총장 파면 절차 :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탄핵심판
그렇다면 검찰총장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임기 2년을 채울 수 있는 불가침의 존재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헌법과 검찰청법 조항에도 명시돼 있지만, 검찰총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검찰총장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 (형사재판에 비유하자면 검사가 죄명을 적용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절차와 같다.) 그리고 탄핵소추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다면 헌법재판소가 검찰총장을 파면 결정할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 때처럼 말이다.
문제는 윤석열 총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일이 있느냐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여러 의원들 주장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의 행위는 헌법이나 법률을 단순히 위배한 정도가 아니라, 검찰총장 탄핵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는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위배 행위의 중대성이 큰 것으로까지 볼 수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보자. 이 대표는 지난 10월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총장이) 수사지휘권 행사가 불가피했다는 대통령이 판단도 부정하고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를 통제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도 무시하는 위험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원내사령탑인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5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라며 "표적, 과잉수사, 짜 맞추기 수사는 검찰권 남용이며 더욱이 검찰권을 갖고 국정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윤석열 총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다는 취지의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은 수두룩하다.
●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탄핵소추는 안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는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의석 수를 넉넉하게 차지하고 민주당은 윤석열 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검찰총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행위를 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말로만 공격할 뿐 정작 탄핵소추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혹시 탄핵소추를 하면 윤석열의 정치적 존재감을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하거나, 그간 해왔던 말과는 달리 윤석열 총장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다고 본다고 자신들도 믿지 못하고 있어서 헌재에서 기각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기 때문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지킬 책임이 있다. 검찰총장 임명권자라고 해도 법률이 명시적으로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이나 해임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은 검찰총장을 마음대로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 법무부가 최근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감찰위원회 자문을 받지 않고도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의 징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 특히 검사의 징계나 인사와 관련해 외부 인사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기존의 방침에 역행하면서까지 갑자기 규정을 바꾼 것을 보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이후 원하는 대로 징계처분을 결정한 후 해임하겠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 자문 절차까지 갑작스럽게 폐지해가면서 법무부가 징계권을 행사해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것은 검찰청법의 총장 임기 보장 조항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란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검찰이 원전 폐쇄 절차와 관련해 현 정부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그러나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법무부 내부의 논란과 무관하게 검찰총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다고 판단한다면 파면 절차인 탄핵소추에 착수할 의무가 있다. 이는 행정부와 무관한 국회의 권한이고 의무이다. 최종적인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리고 탄핵이 결정되든 기각되든, 윤석열 총장의 정치적 존재감이 소멸하든 증폭되든, 그 결과에 대해서 탄핵소추를 추진한 사람들이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중대한 위법을 저질렀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상적이며, 책임 있는 방법이다.
만약 이런 책임을 질 자신이 없다면, 정부와 여당이 '검찰개혁의 적임자이자 좌고우면하지 않는 올곧은 검사'라고 치켜세우며 임명했던 검찰총장을 감당도 하지 못할 말로 공격하는 일은 멈추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국민들이 이 난장판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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