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준법감시위 검증 기준, 총수 견제 빠져 실효성 의문

유설희·박은하 기자 2020. 1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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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논란 제기된 삼성 준법감시위 평가기준

[경향신문]

재판부에 제출한 내용 입수
이측, 준법 선언·교육 등 초점
전문가 “총수 견제 항목 빠져”
특검은 ‘총수 전횡 방지’ 집중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와 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의 최종 형량 결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이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 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평가기준을 경향신문이 10일 입수했다. 이 부회장 측은 위법 행위 관여자 주요 보직 배제 등 10개,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의 진지한 반성 여부 등 5개 평가기준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 측이 낸 기준에 대해 “재벌총수 위법 행위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항목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 측이 지난 9월29일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에 제출한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유효성 평가기준은 총 10개 분야 및 122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됐다. 10개 분야는 ‘위법 행위 예방과 적발을 위한 주의의무 이행 및 준법문화 육성’ ‘준법감시조직의 지위에 맞는 역할 및 책임’ ‘위법 행위자 주요 보직 배제’ ‘모니터링, 실효성 평가, 제보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합리적 조치’ 등이다.

이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이 준법경영을 장려하는 조직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했는지, 준법감시위의 독립성·자율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됐는지 등을 잣대로 준법감시위를 평가해달라는 것이다.

특검 측은 지난달 23일 총 5개의 평가기준을 제시했다. ‘기업 총수의 이익과 계열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영역에서 범죄 예방 가능 여부’ ‘보험업법 개정 등 향후 승계작업 관련 이슈에 대한 준법의지 확인’ ‘피고인 이재용의 진지한 반성 여부’ 등이다. 총수의 위법 행위를 방지할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됐는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회사나 주주가 입게 된 손해에 대해 배상을 할 의사가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홍순탁 회계사, 김경수 변호사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단은 이날 처음 만나 평가기준을 논의했다. 전문심리위원단은 양측에서 제출한 평가기준으로 준법감시위가 실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검토하게 되며 재판부가 오는 30일 공판에서 이들의 의견을 듣는다. 최승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는 “양측이 제출한 평가기준 모두 형식적 사항들은 구비돼 있지만 (이를 근거로 한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평가하기에는 (30일까지는) 시간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위원들이 지난 2월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 사무실에서 준법감시위 제1차 회의를 열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형식적 규정은 구비했지만
준법경영이 뿌리내렸는지
30일까지 평가할 수는 없어

경향신문이 10일 전문가 4명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단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판부에 각각 제출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평가기준에 대한 분석을 의뢰한 결과 모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기업 총수 비리를 실효적으로 방지할 만한 조항이 없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이 부회장 측이 제시한 ‘위법행위 관여자 주요 보직 배제’란 평가기준에 따르면 이 부회장 본인이 지금 당장 부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평가기간이 너무 짧다는 비판도 있었다.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는 최승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 양채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재무관리학회장),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이총희 회계사(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모든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 측이 제시한 평가기준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최 변호사는 “형식적·실질적이라는 두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형식적인 규정은 잘 구비돼 있다”며 “미국 연방 양형기준과 정확히 부합한 기준으로 보인다. 특별히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준법경영이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지, 모든 기업 임직원에게 준법경영이 행동준칙으로 뿌리내렸는지 여부”라며 “이건 실제로 지켰는지 여부를 봐야 하므로 서류만 가지고는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또 “어제 벼를 심었으면 당장 몇㎜가 컸는지는 평가할 수 있어도 이 벼가 수확량이 좋을지 쭉정이가 될지는 아무리 훌륭한 전문심리위원일지라도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재판부가 양측 평가기준에 대한 전문심리위원단의 의견을 듣기로 한) 오는 30일까지 실질을 평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위법행위자 보직 배제 원칙
삼성이 제대로 지킨다면
이 부회장 즉시 물러났어야

이 회계사는 “당연한 내용들만 나열해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측은 ‘위법행위 예방 및 적발을 위한 지침 및 절차 수립과 이행’이란 평가 분야에서 위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대외후원금 지출, 업체 신규 등록 등에 관한 규정과 절차를 강화했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평가받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회계사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위법행위를 적발하지 못할 경우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등 항목이 빠져 있어 유명무실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 회계사는 “이게 현재 감사제도의 문제점인데 이를 수정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제도를 가져다놓아도 실효성은 없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 부회장 측이 제출한 평가기준을 삼성이 지금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 측은 ‘위법행위 관여자 주요 보직 배제’ 평가 분야를 제시하며 “미국 연방 양형기준은 준법의무 위반 행위를 한 임직원이 실권자가 되지 않도록 주요 보직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제재 대상인 임직원을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인사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등 11명에 대해 인사조치를 요청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 항목이 이 부회장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면 이 부회장과 공범들은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이 제시한 기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업 총수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검 측이 제시한 기준에는
재벌 총수 견제 항목 긍정적
단기간 평가 어려운 건 같아

다만 특검의 평가기준 역시 단기간 내 평가는 어렵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대기업 총수를 겨냥한 평가 방법이어서 설득력이 있지만 단기간 내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운영을 이 부회장 개인의 양형에 반영하려는 재판부의 입장 자체에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양 교수는 “개인에 대한 범죄와 기업 범죄를 분리하지 못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미국 연방 양형기준은 개인이 아닌 조직일 때만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한 “범법을 한 개인을 처벌할 때 기업과 일치시켜 처벌하지 못하게 가는 프레임은 옳지 않다”면서 “노숙인이든 이재용이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게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반기업 정서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계사도 “대원칙은 이번에 급히 마련한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에 반영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설희·박은하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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