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목숨 값이 '눈 먼 돈' 전락"..미망인들이 뿔난 이유는?

고귀한 기자 2020. 11.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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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지부 '보조금 착복·비공개' 내부 고발
지부장 '징역 6월·집유 1년' 선고..지자체 부실 관리 '도마위'
© News1 DB

(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피와 눈물, 그리고 한이 서린 보조금의 행방을 명명백백 밝혀내지 못한다면,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도 하늘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볼 낯도 없을 것 같습니다."

9일 <뉴스1>과 만난 전쟁미망인 할머니 8명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지부·지회(광주 미망인회)에 지급되고 있는 '보조금'을 투명하게 밝혀내 정상화를 이뤄내는 게 마지막 숙원이라고 했다.

저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설움을 곱씹으며 시부모와 자식의 보호자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었지만, 이처럼 허탈하고 또 분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들이 털어놓은 사연에는 그들이 짊어져 온 삶의 무게와 고통, 그리고 배신감이 배어있었다.

6·25 당시 북한군이 쏜 포탄에 남편을 잃고 홀로 3남매를 키웠다는 장모 할머니(86)는 "지금껏 어떻게하고 살아왔는데, 같은 미망인들에게는 한마디도 말도 없이 그것도 수 십 년 동안이나 보조금을 몰래 이용해 먹을 수 있느냐"라며 "그동안 살아온 수많은 날을 무시당하고 놀림당한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하다"고 토로했다.

장 할머니의 곁에는 월남전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전사 통지서를 받았다는 박모 할머니(74)를 비롯해 갑작스레 남편이 징집, 현재까지도 남편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는 김모 할머니(85) 등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쌓여있던 울분을 토했다.

이들이 제기한 의혹엔 광주 미망인회가 중심에 있었다.

미망인 할머니들을 위해 주어지는 지방보조금을 광주 미망인회가 수십 년 간 모르쇠로 일관, 독식하고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보조금 집행 기관에서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시 등에 따르면 시와 5개 자치구는 1990년대 초부터 지역 전쟁미망인들의 자활 능력 배양을 위해 광주 미망인회에 지방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지부엔 운영비와 행사비를 포함해 시·자치구 합산 평균 1억 여원(평균 시 3000만원·5개 자치구 각 1400만원)정도가 지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날 만난 미망인들은 "광주 미망인회 회원으로 십여 년 넘게 활동했지만 2017년 7월까지는 '보조금의 존재'를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어떠한 지원 등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할머니들은 당시 민원 차 방문한 광주시청에서 우연히 이러한 보조금에 대해 듣게 됐고, 이때부터 보조금의 사용처 등 행방을 찾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광주 미망인회 지부장인 A씨가 2003년부터 무려 17년 넘게 재임하면서 보조금 사용 내역을 단 한 번도 회원들에 공개한 적 없으며, 지자체에 제출한 서류 역시 거짓으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까지 광주 미망인회는 회원 가입이나 모임·행사 때마다 드는 금액을 회원들에게 분산, 이중으로까지 거둬들여 유용했다"며 "이는 재판부도 인정했다"고 폭로했다.

실제 2018년1월 이 할머니들을 포함한 회원 41명은 광주 미망인회의 A지부장과 B사무국장, C사무원을 업무상횡령과 지방재정법위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한 동안 재수사 등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 4월 열린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 대부분을 받아들여 A지부장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B씨와 C씨에 대해선 각각 200만원,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어 5월 열린 2심도 1심과 마찬가지인 유죄로 인정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지부장 등 피고인들은 2013년부터 39회에 걸쳐 563만7000원의 지방보조금을 임의로 횡령하는 등 죄질이 가볍지만은 않으나,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미뤄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News1

결국 2심 판결이 내려진 이틀 뒤인 5월 20일 A지회장은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이 할머니들은 "아직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광주지회장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가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새로운 새 지부장을 일방적으로 내려 앉히면서, 또다시 보조금 미공개 등 비리가 반복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 할머니들은 광주시와 5개 자치구, 국가보훈처 등에 '보조금 집행 정지'와 함께 대책 마련을 지속으로 촉구하고 있으나, 근본적 사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국가보훈처는 '미망인회중앙회의 인사부조리를 시정 조치해 달라'는 민원에 대해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정관 제24조(직원의 임명)에 따라 지부장은 회장이 임명한다"며 "운영상의 불법사항 등이 관계기관에 통보될 경우 시정 조치 하겠다"고 회신했다.

광주시와 5개 자치구는 '광주 미망인회가 지방보조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원을 중단해 달라'는 민원에 대해 '월례회 등을 통해 공개하도록 보고토록 수시로 권고하고 있다. 보조금은 일부는 삭감 조치했지만, 예산이 책정돼 있는 만큼 전체 중단은 어렵다. 회원별 회비 지출 부분은 내부적으로 합의할 사항으로 사료된다'란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이에 대해 광주 미망인회 한 회원은 "돈도 없고 백도 없다보니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지만, 농부가 쟁기 하나로 밭을 가는 것처럼 지치지 않고 미망인회의 정상화를 위해 계속 싸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1조에 따라 1963년 8월12월 설립됐다.

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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