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투 더 추억"..한국의 '시네마 천국' 꿈꾸는 단관극장들

서정민 2020. 11. 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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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아카데미극장 14년 만에 다시 열어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 85돌 영화제
동두천 동광극장은 '응팔' 배경으로
인천 미림극장은 노인 문화공간 기능도
1983년 원주 아카데미극장 모습.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제공

김홍석(51)씨가 극장에 들어선 순간, 시간은 4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갔다. “1980년대 초반 까까머리 중학생 때 여기서 학교 단체 관람으로 <007 문레이커>를 봤거든요. 그때 모습 그대로네요.” 그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지난 5일 밤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 아카데미극장. 김홍석씨는 아내 김영은(51)씨와 두 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2006년 폐관 뒤 무려 14년 만에 문을 다시 연 아카데미극장은 4~7일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열어 시민들을 맞았다. 역시 중학생 때 이곳에서 영화를 봤었다는 김영은씨는 “두 딸이 여기서 영화를 다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아빠의 추억을 되살려주겠다며 표를 예매했다.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딸들이 더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영화가 시작했다. 상영작은 1987년 국내 개봉한 <빽 투 더 퓨처>. 주인공 마티(마이클 제이 폭스)처럼 관객들도 저마다 시간여행길에 올랐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현재 모습. 서정민 기자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태어났다. 서울에서 영사기사를 하던 정운학씨는 원주 원도심인 평원로 일대에 원주극장(1956)·시공관(1962)·아카데미극장·문화극장(1967)을 잇따라 개관했다. 원주시민들은 영화를 볼라치면 죄다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2005년 원주에도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이들 단관극장 관객이 급감했고, 끝내 2006년 초 동시에 문을 닫고 말았다. 원주극장과 시공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헐린 데 이어, 800석 규모로 가장 컸던 문화극장마저 2015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들어섰다.

그러자 시민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아카데미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여기에 원주시도 관심을 보이면서 원주시역사박물관·원주영상미디어센터 주도로 극장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변해원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은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 지원해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새 소유주도 애초 극장을 철거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내년에 나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내부 모습. 서정민 기자

그사이 원주영상미디어센터는 오랜 세월 방치돼온 662석 규모의 극장을 재단장해 지난 8월 시민들에게 잠깐 공개했다. 그리고 이번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마련했다. 조수정 행사 총괄기획자는 “영화 상영은 물론 연극, 공연, 전시,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맛보기로 운영하며 아카데미극장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시민들 뜻을 묻는 차원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5일 낮 아카데미극장 자유관람 시간에는 유독 젊은층이 많았다. 로비에 전시된 필름 영사기, 좁고 낡은 매표소, 2층 구조로 된 상영관 객석, 꼭대기 영사실 등은 물론, 2층 뒤쪽에 숨은 극장주 가족 살림집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김미진(25)씨는 “어릴 적 엄마·아빠 손 잡고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오늘 다시 와보니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 부모님 모시고 또 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찬실이는 복도 많지> 상영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한 김초희 감독은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극장이 무척 마음에 든다. 요즘 좀 지쳐 있었는데, 영화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망이 샘솟는다”며 웃었다.

1940년 광주극장 모습. 광주극장 제공

광주광역시에선 이곳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단관극장이 지금도 운영 중이다. 유은학원 설립자 최선진씨가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이다. 다만 1968년 화재로 전소한 이후 다시 건물을 세운 탓에 원형 그대로는 아니다. 화재 당시 설립자의 아들 최동복씨 주변에선 “극장을 접으라”고 말렸지만,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재축했다. 지금은 4대째인 최용선씨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다른 단관극장들이 사라졌지만, 광주극장은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지정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되어 살아남았다. 멀티플렉스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1년에 2만5000여명의 관객이 들었다. 23년간 광주극장에서 근무해온 김형수 이사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보조금 없이 입장 수익만으론 856석 규모의 극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극장 모습. 광주극장 제공

위기도 있었다. 2015~2016년 박근혜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길들이려 하자 광주극장은 보이콧하고 보조금을 거부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나섰다. 400여명이 후원회원을 자처해 한달에 1만원 이상씩 후원했다. 덕분에 극장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후원회원은 지금도 4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극장은 해마다 10월이면 개관 기념 영화제를 연다. 지난달 16~31일 연 개관 85돌 영화제의 개막작은 ‘올해의 독립영화’라 극찬받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이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윤 감독은 학창시절 광주극장에서 독립예술영화를 보며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그는 이번에 개막작의 감독으로 금의환향해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윤 감독은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 한 고등학생이 교복 입고 와서 ‘영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예전의 내 생각이 났다. 단지 과거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 뭉클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두천 동광극장. 경기영상위원회 제공

영진위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스크린이 하나뿐인 단관극장은 자동차극장까지 포함해 모두 60곳이다. 대부분 1990년대 이후 생긴 곳이고,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은 광주극장, 동광극장, 미림극장 정도다. 동두천의 동광극장은 1959년부터 이어져왔다. 283석 규모로 특히나 예스러운 외관을 자랑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시그널> 배경으로도 쓰였다. 복고 분위기를 느끼려고 서울 등 멀리서 일부러 찾아가는 이들도 제법 있다.

미림극장은 1957년 인천 동구 송현동에서 평화극장이라는 이름의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것이 시초다. 1966년 지금의 2층 건물을 지으면서 이름을 바꿨다. 미림극장 또한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4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구도심의 문화자산으로 되살리자는 시민사회의 움직임과 인천시의 의지가 맞물려 2013년 실버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이후 시장이 바뀌면서 시의 지원은 끊겼지만, 비영리단체인 인천시 사회적기업협의회가 사명감을 갖고 운영해오고 있다.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는 “지금은 모든 세대를 위한 영화관으로 운영하며 고전 영화와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어르신을 위한 기타 교실, 단편영화 만들기 교실 등도 운영해 노인 문화 공간의 기능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인천 미림극장 모습. 미림극장 제공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인천에는 무려 1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도 있다. 1895년 동인천에 설립된 협률사의 후신인 애관극장이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무너졌다가 1954년 다시 지은 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만 여러차례 리모델링해서 옛 흔적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2004년 5개 관짜리 멀티플렉스로 증축하면서 더는 단관극장이 아니다. 그나마 1관이 옛 단관극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게 다행이다. 윤기형 감독은 애관극장을 조명하는 다큐 영화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만들어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학창시절 애관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보고도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녔는지 몰랐다. 이를 알리고자 5년 전부터 다큐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인천 애관극장 앞에서 다큐 촬영을 하고 있는 윤기형 감독. 류창현씨 제공

오래된 단관극장들은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공간의 가치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개인 소유라는 이유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근근이 운영하는 형편이다.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는 “오래된 외양을 유지하면서 냉난방, 방수 등 보수·관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도 쇼핑몰이나 멀티플렉스로 바꿔야 하나 고민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역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지자체가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금은 광주극장 객석이 많이 비어 있지만, 결코 비어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과거의 수많은 시민, 수만편의 영화들이 계속 그 공간에 머무는 것처럼 기운이 느껴져요. 천편일률적인 멀티플렉스가 장악한 대도시에 역사를 간직한 극장이 하나씩만 남아 있었어도 영화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재밌고 건강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역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담긴 공간을 되살리는 원주 아카데미극장 같은 사례들이 다른 지역으로도 번져나갔으면 합니다.”(김형수 이사)

코로나19 사태로, 있던 극장도 문 닫는 시대에, 한국의 ‘시네마 천국’을 꿈꾸는 이들의 바람이다.

원주/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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