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생존기로 놓인 화웨이.. 트럼프 때와 다른 길 갈까?

장우정 기자 2020. 11.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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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美 기술패권 위협하는 화웨이 제재 기조 이어갈 듯… 강도는 관측 엇갈려
관건은 화웨이 스마트폰 사업, 제재 계속되면 내년 출하량 5000만대 미만으로 '뚝'
美 기업 지지 얻고자 트럼프와 다른 길 가능성도 거론, 범용 칩 공급 허가하면 '생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반(反) 화웨이 전략을 이어갈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통신장비 업계 1위인 중국 화웨이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쓰지 말 것을 요구한 데 이어 △미국 정부 승인 없이는 미 기술·장비를 사용한 반도체 완성품의 화웨이 공급을 원천 차단하며 전 세계 2위인 스마트폰 사업마저 흔들고 있다.

에너지·통상 전략 등에서 트럼프와 다른 길을 갈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은 ‘첨단기술의 미국 리더십 유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와 맥을 같이한다. 때문에 미국의 기술 패권에 위협이 되는 화웨이와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트럼프처럼 계속 날을 계속 세워나갈 것이라는 게 현재로선 우세한 시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화웨이 제재, 탈(脫) 중국은 미국의 안보·기술패권 유지가 핵심 명분이었던 만큼 누가 되든 이런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이끌었던 바이든은 부통령 신분으로 방한했던 2013년 12월,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화웨이의 한국 무선 네트워크 사업 진출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래픽=박길우, 사진=AP 연합뉴스

◇ 트럼프도, 바이든도 우려하는 화웨이

왜 두 사람은 당을 초월해 화웨이에 대한 공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좀 더 본질적인 데서 이유를 찾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화웨이와 여기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하이실리콘(화웨이에 공급할 칩을 설계하는 계열사)의 부상을 누르는 것만이 미국이 전 세계 첨단기술의 우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5G와 수많은 기기에서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핵심 기술인 에지(edge) 컴퓨팅을 실현할 중국 내 유일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에지 컴퓨팅은 말 그대로 중심(데이터센터)이 아니라 가장자리 기기에서 데이터를 처리·분석하는 것이다. 스마트폰·PC 같은 개인용 기기는 물론이고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컴퓨터, 통신사 기지국의 서버(대용량 컴퓨터) 등이 해당된다. 모든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이를 지연 없이 처리하기 위해서는 각 기기가 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화웨이의 사업모델, 하이실리콘의 칩 제조역량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핵심이 되는 데이터 관련 법도 화웨이에 우호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2017년 중국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중국 내 서버에 보관해야 하고, 인민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그 데이터를 열람·활용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법을 시행했다.

김영우 SK증권 이사는 "통신장비를 만드는데다 계열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반도체를 만들고, 여기에 국가정보법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활용할 수 있게 되는 화웨이가 에지 컴퓨팅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은 미국으로선 반드시 막아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화웨이 통신장비를 못 팔게 동맹국들을 설득하고, 하이실리콘의 설계도를 받아 반도체 칩을 위탁생산해주던 대만 TSMC와의 거래 관계를 끊어버리는 등의 제재는 이런 중국의 큰그림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을 인수하기로 한 것도 하이실리콘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하이실리콘은 ARM의 설계도를 받아다가 반도체를 만드는데, 최종 인수합병이 완료될 경우 이런 거래 자체를 미국 측에서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21년 생존기로 놓인 스마트폰, 살더라도 ‘프리미엄’ 이미지는 못 챙길 듯

때문에 화웨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이 바이든 시대의 원년이 될 내년에 생존기로에 놓일 전망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유럽서 메이트40 시리즈 온라인 출시 행사에서 발표 중인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소비자 부문 최고경영자. /화웨이 제공

중국 GF증권은 지난해 2억4000만대였던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이 올해 1억9500만대로 약간 줄다가 내년 5000만대가 채 안 되는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지난 9월 15일 미국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칩을 다량 쌓아놨다고는 하지만, 올해 수입한 칩을 내년 고급 스마트폰 모델에 채용할 수는 없는 만큼 내년 3~4월을 기점으로 출하량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바이든이 트럼프와 같은 제재를 이어나가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갈 칩 공급을 원천 차단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화웨이는 현재 검토 중인 알짜 중가 스마트폰 브랜드 ‘아너(Honor)’ 매각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 화웨이와 관계 없는 독자 브랜드로서 일부 사업만이라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을 구석은 최근 미국 정부가 일부 기업들에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부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 시작한 것이다. 향후 얼마나 많은 기업이 부품 공급을 재개하고, 그 부품이 얼마나 다양해지는가 범위 등에 따라 화웨이가 살아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까지 인텔·AMD가 화웨이에 PC용 CPU(중앙처리장치)로 추정되는 제품 일부를, 삼성디스플레이가 스마트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소니·옴니비전이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를 각각 수출 허가 받았다. 아직까지 핵심 반도체 등 주력 부품에서는 미국 측 허가가 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캐나다 소재 컨설팅 회사인 미래혁신센터(CIF)의 지정학 전문가를 인용해 "바이든 캠프가 칩을 포함, 기술 지정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화웨이에 고급 스마트폰용 칩을 공급해 온) 퀄컴 같은 미국 기업의 지지를 얻기 위해 화웨이로의 칩 수출 금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퀄컴이나 대만 미디어텍(중저가용 칩 공급사)이 화웨이에 칩을 공급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화웨이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에 최적화된 칩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성품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면서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오포·비보·샤오미)들과 차별성이 없어진다"고 했다. 즉, 스마트폰 사업이 생존하더라도 화웨이가 갖고 있던 ‘프리미엄’ 이미지·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5G 통신장비, 재고로 버티고 자체 생산해가며 좀 더 버틸 듯

화웨이가 전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좀 더 버티기가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재고 기준으로 내년 말까지는 통신장비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화웨이는 통신장비에 들어갈 칩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미국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전용 반도체 공장을 중국 상하이에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 공장은 이미 업계가 15년 전부터 상용화한 기술인 45나노 칩을 시험 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 말까지는 28나노 칩을, 2022년 말까지는 5G 통신장비용 20나노 칩을 생산하겠다는 전략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칩은 훨씬 더 첨단 기술이 요구되지만, 통신장비에서는 현재 화웨이 역량만으로도 자립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라는 압박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해왔기 때문에 화웨이가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늘려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LTE(4세대 이동통신)망과 호환되는 5G망 투자가 주로 이뤄지고 있고, LTE망을 장악한 화웨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기존 장비까지 다 바꿔야 하는 만큼 자금력이 없는 국가나 통신사의 경우 화웨이 선택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했다. 결국 화웨이가 남은 재고로 얼마나 버티고, 향후 바이든 체제의 미국이 어느 정도 제재 강도를 이어갈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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