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 코로나19처럼 하면 된다

이하늬 기자 2020. 11. 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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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목! 이 사람]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신과 의사는 죽고 싶다는 사람을 매일 만난다. 실제로 자신의 환자를 잃기도 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의사생활 10년차에 환자를 잃었다. 백 교수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진실씨가 세상을 등지고 딱 일주일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당시만해도 자살보도권고기준, 자살보도윤리강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온갖 기사가 쏟아졌다. 고인이 평소에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이 공개됐고 일부 언론은 그래픽까지 이용해 당시 상황을 그려냈다. 백 교수가 일하는 병원뿐 아니라, 전국의 정신과가 난리가 났다. 응급실로 실려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유명인의 자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절감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2일, 희극인 박지선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백 교수의 외래 진료는 예정보다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혹시나 이번 일로 환자들이 충격을 받을까 우려했다. 최진실씨가 사망한 2008년에 비해 자극적인 기사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정보가 보도되고 있었다.

“사실 대학병원 임상의사는 오는 환자들 치료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래도 진료실에 찾아오는 분들만 봐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뼈 아픈 계기가 됐습니다. 병원 안과 밖이 다 연결돼있더라고요.” 백 교수가 2010년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상훈 선임기자


해외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과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가장 큰 차이는 ‘보고’다. 백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90%가 직접적으로 ‘죽음’을 말해요.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말보다는 행동에서 위험의 신호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기’를 제일 앞에 넣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100만명 이상이 이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해당 프로그램 설계에는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함께 했다. 임 교수도 환자를 잃은 아픈 경험이 있다. 퇴원한 한 할머니가 어느 날 임 교수를 찾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할머니는 다음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임 교수는 자신이 신호를 놓쳤다며 괴로워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보고’는 임 교수의 아이디어였다.

두 사람은 막역했다. 임 교수는 백 교수를 ‘평생의 동반자’라 불렀다. 임 교수는 2018년 12월 31일 진료 중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그날 오전까지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러다 1월 2일 오전 7시반, 유가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두 가지를 말하더라. 안전한 진료환경과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그는 고인의 뜻을 사회가 기억하도록 하는 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유족을 대신해 언론 인터뷰에 응했고 고인의 의사자 지정을 위해 노력했다. 사고 당시 CCTV를 100번 이상 본 것이 대표적이다.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만큼은 정말 잘 자던 사람에게 불면증이 생겼고 악몽에 시달렸다.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위험의 신호라고 판단해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상훈 선임기자


그는 이어 “그리고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환자들도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니까 같이 슬퍼해주고 힘내라고 해주고….” 인터뷰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던 백 교수의 목소리가 이때 조금 흔들렸다. 임 교수의 환자 일부를 백 교수가 맡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백 교수는 “그 사건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우리 사회 흐름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에 의한 사고와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정신건강복지시스템이 지역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중증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고는 나쁜사람이 아니라 방치된 아픈사람에 의해 발생합니다. 예전에는 가족이 아픈 사람을 책임졌는데 핵가족화, 1인가구 시대가 되면서 아픈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사회의 정신건강복지시스템은 이런 현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친구의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지점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구나.”

센터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센터장으로서의 활동은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자살과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고 모두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시스템이어야할까? 코로나19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코로나19처럼 검사하고, 병원에 보내고, 또 이후 추적까지 하면 자살은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죠.” 한국은 15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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